[사설]박물관 지방이관 문제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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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국립박물관을 99년까지 지방자치단체에 이관한다는 정부조직개편위 안이 나왔다.

한마디로 탁상에서 현실을 도외시한 미숙안이다.

한 나라의 박물관 정책은 유물.유적의 보호.관리 및 문화유산의 전승.보전이라는 차원에서 신중한 논의를 거쳐야 마땅하다.

그러나 정개위 논의과정에서 단 한명의 문화재관련 전문가의 의견도 청취한 적이 없다고 한다.

국립박물관의 지방이관이 현실적으로 어떤 문제를 일으킬지 생각도 않은 채 지방화.축소화라는 논리에만 얽매여 확정 발표한 꼴이 됐다.

어떤 현실적 문제가 있는가.

문화재 보존과 지역개발은 공존하기 어려운 대립적 관계다.

고속철도 경주통과 문제나 경마장 건설을 둘러싼 논의에서 충분히 보았듯 지금 우리 수준에선 보존보다 개발이 언제나 앞서는 지역의 숙원사업이다.

지방국립박물관의 존재 자체가 개발억제력을 갖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에 박물관 업무를 이관했을 때 보존은 뒷전이고 개발 이익만 승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지자체의 영세한 재정으로 지금 수준의 유물 전시나 발굴을 유지하기조차 힘들 것이다.

인사교류가 차단되면서 가뜩이나 부족한 전문인력이 갈 곳도 없고 새롭게 지원도 하지 않는 전문가 공백상태가 생겨날 수 있다.

지역문화재를 지방자치단체와 지역 주민들이 알뜰히 보전하고 발굴한다면 더이상 바랄 게 없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그래서 프랑스도 문화홍보성 안에 박물관국을 두고 전국의 박물관을 관장하고 있다.

미국은 연방정부에 박물관서비스연구소가 있어 박물관 지원업무를 다룬다.

일본의 경우 도쿄.나라.교토.오사카.치바에 5개의 국립박물관이 있다.

문화유산에 대한 국민적 의식과 기술적 수준이 우리보다 월등히 앞선 선진국이 이러하다면 우리 박물관의 지방화는 아직은 시기가 이르다.

보존의식과 전문성이 확보될 때까지 국립박물관의 지방이관은 보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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