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신간] 김은규 『하느님 새로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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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종교학의 창시자 막스 뮐러(1823~1900)는 “하나의 종교만 아는 사람은 아무 종교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진보적 신학자 한스 큉(81)은 “종교간의 평화없이 세계평화 없다”고 말했다. 이들 두 사람의 경고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는 책이 나왔다. 성공회대학교 구약학자 김은규 교수의 『하느님 새로보기』(동연, 1만5000원)다.

그리스도교의 절대적 우월성, 제국주의적 공격성, 근본주의적 독단성의 원인은 뭘까. 저자는 “그리스도교가 경전을 절대화하고 잘못 해석하는 해석학적 오류에서 기인한다”고 진단한다. 저자는 구약성서 학자로서 누구보다 경전의 권위와 그 중요성을 깊이 이해하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경전의 절대화가 초래한 병폐를 지적하고, 그것이야말로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 정신인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계명의 위반이라고 밝힌다.

서구학계의 역사비평적 경전연구 방법론으로 철저히 훈련받은 저자는, 경전 텍스트 본문에만 갇혀있는 연구방법의 한계를 지적한다. 그리고 정경화된 성서의 절대성을 비신격화하면서 동아시아 종교들과 경전 상호간의 대화를 시도한다. 그의 학문하는 자세는 정치권력과 종교권력의 야합이 빚어내는 온갖 허위의식을 폭로한다. 아울러 소외받는 자들과 여성 등 사회 약자들을 해방시키는 의심의 해석학 자리에 비판적 지성의 현미경을 고정시켜 놓는다.

저자가 내놓는 비판적 은유는 ‘방패와 창’이다.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종교사에서 ‘오직 야웨만’ ‘오직 예루살렘만’ ‘오직 성서만’ ‘오직 예수이름만’을 고백했던 본래 삶의 자리는 ‘방패’였다. 기존 정치 권력과 종교 세력에 둘러싸여 위협받던 창조적 소수자들이 자기 정체성을 지켜가려는 ‘생존의 방패’ 였다. 그런데 그리스도교가 정치권력과 야합하면서 힘있는 종교가 되자 그게 ‘공격의 창’으로 변질됐다는 것이다. 이 책은 암 종근을 도려내려는 외과의사의 수술대다. 자기절대화 중병에 걸린 채 그 앞에 선 한국교회의 반응이 궁금하다.

김경재 한신대 신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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