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박근혜 ‘스탠퍼드대 연설’이 흥미로운 까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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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는 이번 방미 기간 내내 격렬한 국내 정치 논쟁에 휩싸였다. 몸만 샌프란시스코에 있었지 정치적으론 서울에 있었던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박 전 대표의 6일(현지시간) 스탠퍼드대 연설은 ‘김무성 원내대표 추대 논란’에 밀려 아무 관심을 끌지 못했다. 2007년 대선 경선 이후 첫 공개 강연이었음에도 말이다. 하지만 박근혜의 지지자건, 비판자건 그의 경제관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번 연설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박 전 대표는 연설에서 현 세계경제의 위기와 관련해 ‘원칙이 바로 선 자본주의(the disciplined capitalism)’를 제창했다. 그는 “현 위기는 민간 부문이 이익의 극대화에만 치우쳐 사회의 공동선을 경시해 발생했다”며 “앞으론 주주 이익과 공동체 이익을 조화시켜 더 높은 기업윤리를 창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번 위기가 시장과 감독의 불일치에서 비롯됐듯이 감독의 사각지대가 있어선 안 될 것”이라며 “정부는 시장경제가 작동하는 과정에 문제가 될 소지를 미연에 방지하는 역할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경제발전의 최종 목표는 모든 국민이 참여하는 공동체의 행복 공유에 맞춰져야 하며, 정부는 공동체에서 소외된 경제적 약자를 확실히 보듬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 같은 시각은 지난해 금융위기 이후 개혁 성향의 학자들이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면서 제기한 내용이다. 그래서 흔히 강경 보수파로 분류되던 박 전 대표가 이런 주장을 펼친 것은 뜻밖이었다. 현지에서 연수 중인 김기식 전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연설을 듣고 “박 전 대표가 중도좌로 바뀐 거냐”고 농담을 할 정도였다.

박 전 대표는 과거 야당 대표 시절 노무현 정부의 기업 규제 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런 그가 이번에 자본주의의 심장부인 미국에 가서 자본주의의 혁신을 주장한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일각에선 박 전 대표가 2007년의 실패를 거울삼아 이념적 유연성을 확대하려 하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정말 그렇다면 그의 지지자나 비판자 모두에게 새롭고 흥미로운 이슈가 될 것 같다.

김정하 정치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