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2년 남기고 용퇴하는 정지태 상업은행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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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임기를 2년이나 앞둔 한 은행장의 '용퇴 (勇退)' 가 금융가에 화제가 되고 있다.

정지태 (鄭之兌) 상업은행장의 용퇴선언은 특히 상업은행이 만년 부실을 딛고 일어나 우량은행으로 발돋움하려는 시점에 나온 것이어서 은행가에서는 신선한 충격으로까지 받아들여지고 있다.

鄭행장을 그의 집무실에서 만나봤다.

- 임기중에 용퇴를 결심한 배경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지난 93년 행장을 맡았을 때 은행을 살려놓고 나가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은행이 망할지도 모르는 경영위기를 넘긴후 최하위였던 재무성적이 이제 선발은행중 최상위에 오를 정도로 정상화됐습니다.

은행경영이 본궤도에 오르면 자리를 물려줘야겠다고 늘 생각했었고 지금이 그 때라고 판단했지요.”

- 임직원중에는 올해말 본점완공과 내년 창립 1백주년을 보지 못하고 떠나는 걸 아쉬워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동안 행장을 전폭적으로 따르고 은행살리기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준 임직원에게 감사할 따름입니다.

유능한 후배들이 은행을 더욱 발전시킬 것으로 믿기 때문에 후회는 없습니다.”

- 재임중에 가장 보람있었던 일이라면.

“최악의 부실은행을 정상화시켜놓았다는 것을 무엇보다 보람있게 생각합니다.

한양 문제를 완결하면서 5년간의 자구기간을 2년반으로 단축했고 은행감독원 경영평가도 최상위로 도약시켰습니다.

최근 금융기관의 구조조정이 현안이 되고 있지만 과거 상은이 겪은 고통스런 자구노력에 비하면 크게 어려울 것도 없다고 봅니다.

다행히 요즘은 미리부터 홀로서기의 어려움을 겪은 덕을 톡톡히 보고 있습니다.

다만 은행부실은 관치금융이나 외부여건을 탓할게 아니라 경영진 스스로가 책임을 지고 해결한다는 각오가 필요합니다.”

- 이번 鄭행장의 용퇴가 은행인사 자율화의 모범이 됐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은행경영이 타의에 의해 좌우되지 않도록 인사의 자율성은 최대한 보장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신 경영부실에 대해서는 강하게 책임을 물어야지요. 은행 임원의 임기가 3년이라고 하지만 이를 꼭 채워야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요즘 은행임원은 고통스런 자리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문제지요. 명예퇴직이다 정리해고다 해서 임원 근처에도 못가보고 은행을 나간 후배들에게 떳떳하기 위해서라도 스스로 조직에 꼭 필요한 사람인지를 판단해야 합니다.”

- 앞으로 계획은.

“아직 특별히 계획한 일은 없지만 할 일은 많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35년간 은행생활을 하느라 가정에 소홀했던 점도 만회를 해야지요. ”

김종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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