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연찮은 미 ‘스트레스 테스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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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분석 8일(현지시간) 뉴욕 증시의 투자자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전날 장을 마친 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공개한 은행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에 대해 다우지수가 ‘1.96% 상승’(종가 8574.65)으로 화답했기 때문이다.

스트레스 테스트는 경기 침체에서 앞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금융회사가 어느 곳인지를 FRB가 골라내는 작업이다. 두 달여 동안 테스트한 결과 뱅크 오브 아메리카(BoA)·웰스파고·씨티그룹 등 10개 은행에는 총 746억 달러의 자본 확충 명령이 내려졌다. 골드먼삭스·JP모건 체이스 등 나머지 9곳은 자본을 더 늘리지 않아도 앞으로의 파고를 넘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이런 시장 반응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대공황 이후 최악이라고 호들갑 떨던 몇 달 전에 비해 너무 순조로운 분위기다. 난제로 거론됐던 부실자산 처리와 취약한 금융 시스템에 대해서도 아직 딱히 해답이 나온 게 없다. 결국 “금융회사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 없이 시장이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만 정부가 골라서 해준 셈”이란 혹평이 나오고 있다.

#“스트레스 테스트가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지 않았다.”(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

정부의 스트레스 테스트 기준 자체가 너무 헐렁했다는 것이다. 이번 테스트는 최악의 경우 미국 경제성장률이 올해 -3.3%, 내년엔 0.5%를 기록하며 실업률은 올해 8.9%, 내년 10.3%까지 오를 것을 가정했다. 그러나 이 수치가 전문가 예상치와 비교할 때 엄밀히 ‘최악의 경우’는 아니란 지적이다.

#“은행들이 자본을 어떻게 조달할지 불분명하다. (테스트가) 혼란만 가중시켰다.”(마이크 홀랜드 홀랜드앤코 회장)

자본 확충 명령을 받은 은행들엔 7개월의 말미가 주어졌다. 다음 달 8일까지 계획서를 제출한 뒤 11월 9일 전에는 각각 할당된 돈을 끌어와야 한다. 실패하면 다시 정부가 개입하게 된다. 은행 입장에선 국유화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것이다. 은행들은 유상증자나 자산 매각을 통해 돈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이지만 경제 사정이 확 좋아지지 않는 한 간단치 않다.

#“은행 구조를 완전히 바꾸지 않으면 1990년대 일본의 전철을 밟게 될 것.”(질리언 테트 파이낸셜 타임스 칼럼니스트)

일단 스트레스 테스트를 통해 정부가 시장의 불확실성을 없앤 것은 다행이지만 차제에 은행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치는 과정이 따르지 않으면 더 큰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경고다. 테트는 지금의 미국 상황을 보면 90년대 ‘잃어버린 10년’의 일본이 떠오른다고 지적했다.

김필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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