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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특수수사의 신’과 ‘미스터 검찰’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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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호 02면

1954년 일본 사회를 시끌시끌하게 한 사건 이야기. ‘조선의옥(造船疑獄)’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조선업계로부터 돈을 받은 거물급 정치인에 대한 수사였다. 훗날 일본 총리를 지낸 이케다 하야토(池田勇人)와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도 이 사건에 연루됐다. 사토 전 총리는 1974년 노벨 평화상까지 받았다. 수사를 맡은 도쿄지검 특수부는 이 정치인들을 구속하려 했지만 이누카이 다케루(犬養健) 법무상이 체포를 보류하라는 지휘권을 발동했다. 이 때문에 거물 정치인 구속은 무산됐지만 사건의 파장은 컸다. 이누카이 법무상이 지휘권을 발동한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요시다 내각은 6년간 장기 집권 끝에 무너졌다.

사건을 담당한 도쿄지검 특수부에는 성향이 다른 두 검사가 있었다. 수사를 지휘한 가와이 신타로(河井信太郞)와 그를 보조한 이토 시게키(伊藤榮樹) 검사다.

가와이 검사는 일본 검찰사에서 ‘특수수사의 신’으로 불릴 정도로 정·관계 수뢰 사건에서 물불 안 가리고 거물을 잡아내는 능력을 보였다. 이토 검사는 냉철한 이성과 균형 잡힌 리더십이 특징이었다고 한다. 그의 별명은 가장 검찰답다는 의미로 ‘미스터 검찰’이었다.

이누카이 법무상의 지휘권 발동에 두 검사의 반응은 달랐다. 가와이 검사는 법무상의 지시를 따르면서도 심한 좌절을 느낀 것으로 전해진다. 가와이 검사는 자신의 저서 『검찰독본』에서 “범죄 수사에 의해 내각이 붕괴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사실을 추궁하고 증거를 수집해 수사를 진행한 결과가 그렇다면 하는 수 없다. 그것이 국가의 조직이고 국가가 가야 할 길이라고 본다. 검찰이 수사를 흐지부지함으로써 발생하는 폐해는 내각 붕괴로 인한 것보다 크다”고 밝혔다.

가와이를 보조했던 이토 검사의 생각은 좀 달랐다. 그는 저서인 『추상열일(秋霜烈日)』에서 집권당인 자민당의 수뇌부를 구속할 경우 발생할 국가적 혼란을 걱정했다. 검찰권 행사의 균형성이란 측면에서 지휘권 발동을 내심 다행으로 생각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탱크처럼 밀어붙이는 선배 검사 가와이를 존경하지만 걱정했던 것이다.

두 사람 가운데 가와이는 오사카 고검장을 끝으로 검찰을 떠난다. ‘미스터 검찰’인 이토는 일본 검사총장(검찰총장)까지 오른다.

대한민국 검사라면 가와이와 이토 검사의 얘기를 한 번쯤 들었을 것이다. 가와이 검사가 지은 『검찰독본』은 검사들의 필독서다. 대검찰청은 몇 년 전 ‘검사들이 올 해 읽어야 할 10권’ 가운데 하나로 이 책을 꼽기도 했다. 아마도 “가와이 같은…” “이토 같은…”이란 생각을 했을 수도 있다.

지금 검찰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구속 문제를 놓고 장고에 들어갔다. 임채진 검찰총장은 검사장들에게 구속·불구속 기소에 대한 의견까지 들었다고 한다. 임 총장의 결정이 ‘가와이형’이 되든 ‘이토형’이 되든 스스로 양심에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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