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KBS '용의 눈물' 세자빈役 안연홍…사극통해 모진 삶 간접체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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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태조 이성계의 타계로 슬픔에 빠져있는 태종을 아랑곳하지 않고 기방을 드나드는 세자 양녕의 파격적 행동으로 KBS '용의 눈물' 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이 드라마의 갈등축이 태종과 원경왕후를 거쳐 양녕대군으로 비화되면서 가장 수심에 찬 사람은 세자빈 김씨일 것이다.

외가 민씨 일파를 두둔하며 비정한 권력투쟁에 환멸을 느끼는 양녕에게 태종은 세자 교체라는 냉혹한 처벌을 가하기 때문. 스스로 비극적 운명을 불러들이는 세자 곁에서 그의 고뇌와 방황을 인내하며 포용하는 세자빈은 따라서 자신에게 '독한' 여자일 수 밖에 없다.

87년 대하사극 '토지' 에서 당찬 눈망울의 어린 서희역으로 시청자에게 첫선을 보인 안연홍 (21) 은 세자빈 김씨의 성품을 '독종' 이라고 단언한다.

“자신에게 가혹할 수 없으면 어떤 것도 참을 수 없는 거 아닌가요. 김씨는 폐세자빈이라는 현실과 양녕의 광태를 속울음으로 이겨낸 여자예요.” 그녀가 이렇게 서슴없이 말하는 이유는 뭘까. “촬영 스케줄을 맞추다보면 학교생활에 지장이 많아요. 본의 아니게 친구들 한테 오해를 받을 때도 있고 모욕적인 빈정거림도 없는 건 아니죠.” 화는 나지만 일일이 따져서 해결될 일이 아니라며, “입술에서 피가 나도록 참았다” 고 한다.

독한 일면이다.

인상을 결정짓는 눈빛엔 새벽녘 정화수 기운이, 이마를 보면 단호한 성격이 읽히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제 갓 스물을 넘겼을 뿐이지만 세자빈의 소용돌이치는 내면 연기에 자신감을 보이는 것도 '임꺽정' '만강' '미망' 등 사극에서 짓밟히고 버림받는 여인상을 연기하면서 간접 체험하게 된 모진 삶의 유전을 깊은 눈매에 간직하기 때문이다.

방학이 끝나면 졸업반 (동국대 연영과) 이 되는 그녀는 “장희빈하면 누구를 떠올리듯이 세자빈 김씨, 안연홍으로 시청자들 기억에 남고 싶어요” 라며 배역으로 승부하는 연기자의 일면을 드러냈다.

일회용품처럼 소모되는 드라마의 홍수 속에서 배역은 크지 않지만 이래저래 고생하며 배울게 많은 '베스트극장' '한국전쟁특집드라마' 등 단막극을 선호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정용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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