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죽어서도 화제가 된 양, 그녀는 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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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이언 월머트, 로저 하이필드 지음
이한음 옮김, 사이언스 북스, 390쪽, 1만8000원

 암양 한 마리가 세상을 온통 들쑤셨다. 1996년7월5일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근처의 로슬린 연구소에서 탄생한 세계 최초의 복제양 돌리 이야기다.

연구 주역인 월머트 박사는 과학저술가 하이필드와 함께 저술한 이 책에서 돌리 탄생의 진행과 후폭풍을 정리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연구팀은 순수한 호기심에서 출발했다. 이들은 암양 젖샘 세포의 핵을 다른 양의 난자에 넣는 것으로 복제 과정을 시작했다. 그래서 풍만한 가슴의 미국 가수 돌리 파튼에서 이름을 땄다. 과학자들의 위트다.

돌리는 결코 쉽게 탄생하지 않았다. 277번에 걸친 지루한 시도의 결과였다. 그렇다고 해서 연구팀이 별 보상을 받은 것도 아니다. 정부 연구소라면 으레 그러하듯 이들도 연구비에 쪼들렸다. 돌리가 세상에 알려진 바로 그날 영국 정부는 월머트 박사에게 지원될 예산을 삭감했을 정도였다.

혼동과 과대·과장, 그리고 오해가 이들의 뒤를 따라다녔다. 연구진은 돌리가 불치병의 치료법을 곧바로 제공해줄 것이라는 과도한 희망과 인간복제라는 묵시론적 세상이 올 것이라는 극심한 절망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세태에 익숙해질 수밖에 없었다. 인간복제를 바탕으로 하는 사교 집단까지 나타났을 정도로 오해가 극에 달했다. 하지만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돌리 탄생이 줄기세포 관련 기술 개발의 희망을 낳은 것은 분명한 성과다. 줄기세포는 어떤 세포로도 변할 수 있어 다양한 난치병을 치유할 길을 터놓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문제는 윤리적인 우려다. 월머트는 치료용 복제와 번식용 복제를 분명히 구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과학적 연구는 하되, 맞춤 아기를 얻기 위한 비윤리적인 인간 복제는 막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과학자들은 돌리를 어떻게 봤을까. 그들은 돌리가 폐암에 걸렸음을 확인하자 약물로 안락사 시켰다. 눈물을 글썽이면서 말이다. 2003년 2월의 일이다. 이 화제의 양은 박제가 되어 스코틀랜드 왕립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하지만 돌리가 일으킨 파장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라고 지은이는 강조한다. 우리가 생명과학 분야에서 논의하고 합의하면서 진행할 일이 여전히 많다는 지적이다. 

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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