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 ‘기도의 날’ 행사 없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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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미국의 5월 첫째 주 목요일은 ‘전국 기도의 날(National Day of Prayer)’이다. 이날엔 전국 곳곳에서 기독교식 기도회가 열린다. 1952년 해리 트루먼 당시 대통령은 이날을 제정하는 법에 서명했다. 88년 로널드 레이건 당시 대통령은 5월 첫째 주 목요일을 기도의 날로 지정했다. 레이건은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기도회를 열었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거창한 기도 행사를 개최했다. 부시 집권 시절 백악관 기도 행사엔 기독교 보수그룹을 대표하는 ‘포커스 온 더 패밀리’의 제임스 돕슨 목사와 부인 셜리 돕슨이 깊이 관여했다.

그런 그들이 올해엔 백악관 문턱을 밟지 못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기도회를 열지 않았기 때문이다. 백악관은 이 사실을 미리 알리면서 “대통령은 개인적으로 기도할 것”이라고 밝혔다. 로버트 깁스 대변인은 “대통령은 자신과 가족의 삶에 미치는 기도의 역할이 어떤 것인지를 잘 이해하고 있다”며 “대통령은 기념 성명을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백악관의 전통이 되다시피 한 기도회가 열리지 않자 미국에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기도의 날 위원회’ 위원장인 셜리 돕슨은 “실망했다”며 “오바마 대통령이 기도의 중요성을 충분히 인식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강조하는 단체에선 환영 목소리가 나왔다. ‘미국 세속 연합’의 론 밀러 국장대리는 시카고 트리뷴 등과의 인터뷰에서 “연방정부가 특정 종교를 지지한다는 인상을 줘서는 안 된다”며 “부시가 이어온 기념행사를 오바마가 끊은 건 좋은 출발”이라고 말했다.

  워싱턴=이상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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