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걸신증이라는 성적 박테리아가 방방곡곡을 휩쓸어서 인심이 자못 퇴폐한 모양이오. 이에 따라 이혼, 야합이라는 희비극이 날을 따라 도처에 연출되는 모양이오(염상섭 ‘감상과 기대’·1925).” 신여성이 꿈꾼 자유연애가 비아냥의 대상이던 그 무렵 남편 김우영과 함께 떠난 세계여행길. 파리에서 그림 공부 하던 그녀(사진=나혜석기념사업회 제공)는 남편의 친구 최린과 파리의 연인이 되고 말았다. “나는 결코 내 남편을 속이고 다른 남자를 사랑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나이다. 오히려 남편에게 정이 두터워지리라 믿었사외다. 구미 일반 남녀 부부 사이에 이러한 공연한 비밀이 있는 것을 보고 또 있는 것이 당연한 일이오. 남편이나 본부인을 어떻게 하지 않는 범위 안의 행동은 죄도 아니요 실수도 아니라 가장 진보된 사람에게 마땅히 있어야만 할 감정이라 생각하오(‘이혼고백장’·1934).” 그러나 등 돌린 이는 남편과 연인만이 아니었다. 사회 전체가 적개심을 드러냈다. “에미를 원망치 말고 사회제도와 도덕과 법률과 인습을 원망하라. 네 에미는 과도기에 선각자로 그 운명의 줄에 희생된 자이었더니라.” 그녀의 말마따나! 가부장권과 군국주의가 지배하던 그때 남녀동권을 꿈꾼 그녀의 삶은 실패로 예정되어 있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때 치열한 삶을 산 나혜석은 오늘 수많은 알파걸들을 낳게 한 한 알의 밀이었다. ‘어머니날’을 ‘어버이날’로 바꾼 것은 우리가 진정한 양성 평등사회의 도래를 갈망하기 때문이 아닐까?
허동현(경희대 학부대학장·한국근현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