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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빗장풀린 기업 인수·합병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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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비상경제대책위원회 (비대위)가 새로운 대기업 구조조정에 관한 방향을 발표했다.

그 가운데는 외국인의 적대적 인수.합병 (M&A) 을 전면 허용하되 국내기업의 방어력을 키워주기 위해 출자총액제한을 철폐하는 등 획기적인 방안이 들어 있다.

이제 우리나라의 기업은 비닐하우스의 온실상태에서 하루아침에 비닐보호막이 벗겨지는 새로운 상황을 맞이했다.

기업경영이 부실해지거나 실적이 좋지 않은 기업은 무차별적으로 국내외의 다른 기업으로부터 공격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기업이 경영의 결과에 대해 직접적인 책임을 지는 시대의 도래다.

한마디로 시장을 통해 기업의 경영실적을 감시하는 체제가 됐다.

비대위는 이번에 그동안 대기업의 구조조정을 놓고 빅딜 (기업간 사업교환) 을 둘러싼 인위적 조정보다 빨리 시장에서 구조조정이 이뤄지도록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셈이다.

동시에 이번 조치로 외국자본유입이 가속돼 환율안정에 기여하기를 기대하는 듯하다.

그동안 김대중 (金大中) 차기대통령측이 국제통화기금 (IMF) 과 합의한 내용을 중심으로 추진해 온 대기업 구조조정방향은 크게 세가지 맥락이다.

상호 빚보증해소.경영투명성 제고 및 기업 재무구조개선 촉진이 그것인데 이번 조치에도 이와 관련된 내용이 포함돼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은 이미 예고돼 왔던 것이며 다만 일부 시책의 도입시기가 앞당겨졌을 뿐이다.

기업에 큰 충격으로 받아들여지는 부분은 역시 외국기업에 의한 적대적 M&A의 허용이다.

막대한 자금력을 갖고 있는 외국자본은 그 어느때보다 싸고 쉽게 한국기업의 경영권을 장악할 수 있게 됐다.

예를 들어 이미 외국자본이 상당한 주식매집을 한 SK텔레콤은 외국인이 직간접으로 경영간섭을 해올 경우에 어떻게 대처할지 고민중이라고 한다.

크고 작은 한국기업이 외국자본이 경영장부열람을 요청하거나 사외이사 참가를 요구하는 등 파상적인 공세를 예상해야 할 것이다.

단기적으로 어려운 환경이지만 이는 기업으로서는 넘어야 할 산이다.

궁극적으로 경영권을 지키려면 기업경영을 충실히 해 주식가치를 계속 유지시키는 길밖에 없다.

동시에 방만하게 널려있는 그룹의 역량을 중심기업으로 집중시켜 자사주매입을 통해 방어력을 키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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