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공기업 노사의 ‘누이 좋고 매부 좋고’식 야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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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공기업 노사의 도덕적 해이가 심각한 수준이다. 기획재정부가 어제 정부 공시시스템에 올린 공기업별 노사 행태를 보면 대부분의 공기업들이 채용·이동·평가·승진 등 인사 전반에 걸쳐 노조에 특혜를 주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철도시설공단 등은 노조 전임자들이 근무평가에서 최고 점수를 받도록 임단협에 못 박았다. 석유공사 등은 조합원 유고 때 배우자나 자녀를 특별채용하는 조항을 만들었다. 아예 불법노조 활동을 방임하는 조항을 임단협에 포함시킨 곳들도 있었다. 가스공사는 노조 전임자가 쟁의행위를 할 경우 민·형사상 면책을 받도록 규정해 놓았고, 심지어 한국공항공사는 반노조적인 직원에 대한 징계 요구권까지 허용했다. 인사권까지 간섭하는 판국이니 그야말로 공기업은 ‘노조 파라다이스’인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경영이 온전하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공공기관의 1인당 평균 연봉은 전체 근로자보다 66%나 높지만 수익성은 상장기업 평균의 30%에 불과하다. 끊임없이 불거지는 공기업 임직원들의 범죄와 비리도 방만경영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이런 파행경영의 배경엔 민간 부문의 6배에 이르는 조직률로 경영층을 압박하는 노조의 집단이기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노조만을 탓할 수도 없다. 얼토당토않은 임단협을 묵인하는 경영진에도 문제가 있다. 책임감 없는 기관장들이 자리 보전을 위해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식으로 노조와 담합해서 벌어지는 작폐들이기 때문이다.

노사가 똘똘 뭉쳐 혈세를 축내는 이런 공기업들을 언제까지 그대로 두어야 하는가. 양대 노총은 공공부문 개혁에 극렬히 저항하고 있지만 실정이나 제대로 알고 하는 주장인지 의심스럽다. 정부는 공기업 민영화와 구조조정 계획을 늦춰서는 안 된다. 경제 여건을 이유로 미적거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 이번에 다시 한번 입증됐다. 차제에 공기업 감사 시스템도 단단히 손을 볼 일이다. 도대체 이 지경이 되도록 상급 감독관청은 무얼 했으며, 내부 감사부서는 손을 놓고 있었단 말인가. 감사원은 며칠 전 공공기관 개혁의 책임을 해당기관에만 묻지 않고 감독관청에까지 물리겠다고 했지만 말에만 그쳐서는 안 된다.

이번에 드러난 불·편법 노사관행 중에는 범죄나 다름없는 사안들도 많다. 사법 당국이 나서서 철저히 조사해 일벌백계로 엄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