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격차에서 가장 좁히기 어려운 게 ‘사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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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호 30면

기업 간 격차를 만들어내는 핵심 요인은 무엇일까? 선발 회사와 격차를 좁히고 후발 회사와 격차를 벌리려는 경영자에겐 격차의 핵심 요인을 찾아내는 게 매우 중요하다. 특히 요즘처럼 변화가 극심할 때 핵심 요인은 더 큰 위력을 발휘하기 때문에 격차에 대한 경영자의 관심은 상당히 높기 마련이다.

신현만의 인재경영

‘격차’라는 말이 널리 쓰인 것은 1990년대 중·후반에 ‘디지털 디바이드(digital divide)’라는 말이 언론에 등장하면서다. 디지털 경제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정보 격차’ 때문에 노동자 계층이 중산층에서 탈락해 빈부격차가 심화될 수 있다는 뜻으로 쓰였다. 몇 년 전에는 한국 언론들이 ‘영어 격차(english divide)’란 표현을 많이 사용했다. 영어 실력의 차이가 사회경제적 격차로 이어진다는 말이다.

기업의 경우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 때 격차를 만들어낸 핵심은 자금이었다. 당시 대우와 쌍용 등 재무구조가 취약한 기업들이 대거 몰락했다. 반면 재무구조가 탄탄했던 기업들은 외환위기가 도약의 계기가 됐다.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삼성은 거의 모든 계열사가 업종의 선두로 부상해 지금까지 그 위치를 고수하고 있다.

외환위기를 겪은 지 10년이 지난 지금 인재가 기업 간 격차를 만들어내는 핵심 요인이 되면서 기업들은 ‘자금 격차(capital divide) 시대’를 지나 ‘인재 격차(talent divide)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 본격화하기 시작한 이러한 현상은 최근 단순한 기업 간 인재 수준의 차이(gap)를 넘어 사회적 쏠림 현상을 초래하는 격차로까지 발전하고 있다.

내가 아는 어떤 중견기업은 오랫동안 선발 회사를 따라잡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 왔으나 역부족이었다고 한다. 이 회사는 기술개발과 마케팅에 전력투구한 결과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발돋움하는 데 성공하긴 했지만 선발 기업과 격차를 줄이지 못했다. 최근에야 그 이유를 알게 됐는데, 그것은 바로 맨파워였다. 이에 따라 회사는 우수 인재를 선발하기 위해 근무환경을 개선하고 연봉을 올렸다. 하지만 인재 격차는 여전하다. 선발 회사 수준의 직원은 입사를 기피하고, 어렵게 뽑은 직원은 얼마 못 견디고 떠난다. 이 회사 사장은 “기업의 격차 가운데 가장 좁히기 어려운 것이 사람”이라고 토로한다.

서울대 경영학부 출신들의 취업 동향은 기업의 인재 격차를 잘 보여 준다. 서울대 경영학부 출신은 기업들이 가장 뽑고 싶어 하는 인재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학부 정원은 130명밖에 되지 않는 데다 졸업생 대다수는 변호사나 회계사·공무원이 되기 위해 시험공부를 하거나 교수가 되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한다. 취업한다 해도 외국계 컨설팅 회사나 투자·금융회사를 선호한다. 설령 기업에 들어가더라도 민간 대기업이 아니라 공기업을 택한다. 이 때문에 졸업한 뒤 곧바로 민간 대기업에 입사하는 경우는 소수다. 더구나 이렇게 입사해도 3년 정도 지나면 상당수가 경영대학원(MBA)에 진학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대부분의 중견기업은 물론이고 웬만한 대기업에서도 서울대 경영학부 출신을 찾아보기 쉽지 않다. 기업들이 뽑기 어려운 것은 비단 이들만이 아니다. 내로라하는 명문대학 출신은 대부분 대기업이나 공기업, 금융회사, 외국계 기업으로 몰린다. 이 때문에 중소·중견기업들은 명문대 출신을 채용하기 어렵다. 특히 입사자들은 재직하고 있는 선배들을 보고 지원하는 경향이 있어 우수한 인재의 쏠림 현상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이 때문에 주요 대기업은 희소한 광물자원을 확보하듯 유능한 인재를 입도선매하고 있다. 대기업은 ‘평범한 인재를 모아 강하게 훈련시켜 세계 최고를 이룬다’는 게 허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장학금 제공이나 선배 동원은 물론이고, 경영진이 직접 인재 투어에 나서고 있다. 이들은 최근 헤드헌팅 회사 등을 통해 잡마켓에 나오고 있는 인재를 영입하는 데도 적극적이다. 적은 비용으로 유능한 인재를 확보하기에 지금이 가장 좋은 기회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중소·중견기업들이다. 이들은 인재를 확보하지 못하면 절대로 선발 기업과 격차를 좁힐 수 없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거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인재 격차가 계속 확대될 경우 중소·중견기업들이 대기업과 경쟁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지난 2월 이윤우 삼성전자 부회장은 경영전략회의에서 “지금은 초격차(超格差) 확대의 시대이기 때문에 내부 효율과 스피드 경영을 강화해 경쟁사와 격차를 더 크게 벌리자”고 강조했다. 『초격차 확대의 시대』는 일본의 경제평론가 하세가와 게이타로가 쓴 책이다. 경제가 위기에 처했을 때 승자와 패자 사이의 차이가 과거보다 더 크게 벌어진다는 뜻인데, 이 초격차를 확대하는 핵심 요소가 바로 인재다.

지금은 인재 격차 시대다. 기업은 물론이고 대학·병원·로펌, 그리고 공공기관까지 모두 인재의 수준을 끌어올리려고 애쓴다. 그러나 여러 격차 가운데 가장 좁히기 어려운 것이 인재 격차다. 그런 점에서 선발 기업과 격차를 좁히고 궁극적으로 선발 기업을 넘어서려는 기업이라면 최근 조성되고 있는 인재의 황금어장을 그냥 지나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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