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독서 고수] 김형경의 『꽃피는 고래』 를 읽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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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흔히 슬픔은 피할 수 없는 것이며 슬픔을 잊어버려야 행복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얼마만큼의 눈물을 쏟아내야 하는 걸까? 라는 물음에 숨이 막힌다. 김형경은『꽃피는 고래』에서 우리가 고민했던 눈물의 양(量)을 담아내고 있다. 오랫동안 치유하는 글쓰기를 해온 작가의 섬세함이 엿보인다. 이 소설에서 작가는 “눈물의 양이 기억을 자극한다”고 말한다. 덧붙이면 기억이라는 심연에 눈물을 채울 때 ‘꽃피는 고래’처럼 삶이 극적이라는 것이다. 꽃피는 고래라는 의미는 ‘고래가 죽기 전에 마지막 숨을 내뿜는데 그 숨에는 피가 공중으로 솟구쳤다가 온 바다 가득 퍼지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 꽃피는 고래를 보고 열여섯에 어른이 되었다고 말하는 장포수 할아버지는 처용포에서 전설적인 고래잡이였다. 또한 열다섯에 이곳으로 시집온 왕고래 할머니도 그때 어른이 되었다. 반면에 쓸모 없는 주민등록증을 가지고 있는 열일곱 소녀 니은이는 어른이 되지 못했다. 뜻하지 않는 사고로 엄마와 아빠를 잃어버렸고, 아버지의 고향인 처용포에서 슬픔을 잊어버리려고 했는데 오히려 니은이의 뱃속에 꽃게며 거북이며 잉어가 헤엄쳤다. 그럴 때마다 구질구질한 통증이 꿈틀거렸다.

작가 말대로 니은이의 슬픔은 압력밥솥과 같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수증기를 내뿜으며 소란스럽다. 어른이 되는 데 있어 두 사람처럼 굳이 나이를 따져봐야 소용이 없다. 하지만 니은이는 미성년과 성년이라는 시간의 계곡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정상이고 비정상인지 혼란스럽다. 더구나 죽은 엄마와 아빠를 가슴속에서 깨끗이 잊어버리는 게 좋은 건지 아니면 기억하는 게 좋은 건지 표류한다. 그때 장포수 할아버지는 기억하라고 담담하게 말한다. 이유인즉 “그것을 잘 떠나 보내기 위해서지. 잘 떠나 보낸 뒤 마음속에 살게 하기” 위해서다.

이렇듯 김형경은 처용포의 어제와 오늘을 통해 사춘기 소녀의 성장통을 따뜻하게 그리고 있다. 처용포의 어제는 고래가 신화처럼 숨 쉬는 반면에 처용포의 오늘은 고래가 박물관에 전시된다. 신화가 사라지고 이성이 넘쳐나는 시대는 그만큼 소금기를 잃어버린 시대다. 이곳에서 고래는 더 이상 살지 못한다. 어디 고래뿐이겠는가? 이 소설을 통해 우리는 가슴에 담아 둔 슬픔과 두려움을 모두 몸 밖으로 내뿜어야 한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몸 안에 가지고 있어봐야 부질없는 것이다. 지독한 방황을 하고 있다면 이제 우리 한 번 꽃피는 고래를 기억해보자. 뿐만 아니라 슬퍼하는 방법 못지않게 자기 삶에 대한 밑그림이 중요하다는, 힘찬 메시지를 알게 될 것이다.

<임재청·회사원·경기도 파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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