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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고아 신세 GM대우, 다시 국내 입양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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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16세 때가 되던 해 여름, GM은 대우와 재혼했다. 떠오르는 청년 재벌이던 대우는 야심이 컸다. 새한이란 이름부터 대우로 바꿨다. 92년엔 GM과도 갈라섰다. 대우차의 홀로서기가 시작됐다.

그때부터 10여 년이 대우에겐 황금시절이었다. 그는 대우가문의 종손이 됐다. 새 아버지 김우중 회장의 종손 사랑은 남달랐다. 땡빚을 얻어 뒷바라지를 할 정도였다. 가문의 전자나 건설, 증권 형제들이 말렸지만 듣지 않았다. 최고의 차를 만들 기술은 없었지만, 최고로 싸게 질 좋은 차를 조립할 실력을 믿었다. 미국은 물론, 폴란드며 인도까지 대우차의 깃발을 꽂았다. GM과 갈라설 때 연 18만 대 정도였던 생산능력은 6년 만에 200만 대로 올라섰다. 그러나 운이 없었다. 97년 외환위기가 닥치자 땡빚이 목을 좼다. 2000년 부도를 내고 법정 관리됐다. 나라님과 빚쟁이들은 그를 해외에 팔기로 결정했다. 국민기업으로 살려내자는 여론이 있었지만, 소수 의견으로 밀렸다. 대신 연간 300만 대 이상을 만들어내야 10년 뒤에도 세계 자동차 시장이란 험난한 강호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이상한’ 주장이 판을 쳤다(당시 당국자들에게 묻고 싶다. 10년이 흐른 요즘 연간 1000만 대를 만들어내는 GM은 왜 파산위기에 몰렸는지).

대우를 발가벗겨 매대에 내놨지만, 2년 넘게 임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자산(12조원)보다 많은 18조원의 빚이 문제였다. 뼈를 깎는 구조조정으로 간신히 흑자를 낸 2002년, 그제야 GM은 대우를 선심 쓰듯 데려갔다. 두둑한 양육비까지 받고서.

대우가문의 한 사람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김우중 회장이 건재했다면 결코 불가능했을 가격에 GM은 대우차를 손에 넣었다. 대우 패망사를 더듬어 보면 기다릴 줄 알았던 GM이 최후, 최대의 승리자였던 셈이다.”

GM에 팔려간 뒤 7년, 한동안 잘살 듯하던 대우는 요즘 다시 고생이다. 도처에 손을 벌려 보지만 쉽지 않다. 양부모인 GM은 제 코가 석 자다. 입양한 ‘남의 새끼’를 챙길 여유가 없다. 경제 위기 후 부쩍 커진 미국민의 ‘내 새끼 먼저’ 정서도 걸림돌이다. 일전에 AIG가 다른 나라에 빌린 돈을 갚았다가 ‘국민세금으로 남의 새끼 먼저 챙긴다’며 호되게 혼난 경험도 있다. 대우를 살 때 버티기로 득을 본 기억도 아직 생생하다. 1일 닉 라일리 GM 아태본부 사장이 “GM의 대우 지원은 없다”며 버티기로 나선 것도 그래서다(산은은 대우 지분 28%를 가진 2대 주주다).

산업은행도 갑갑하긴 마찬가지다. 엄연히 양부모가 따로 있는데, ‘남의 새끼’ 양육비를 댈 명분이 없다. 그래도 대우가 망가지면 당장 괴로운 건 이쪽이다. 비록 성씨는 바꿨지만 대우의 뿌리는 한국이다. 이 땅에 거느린 식솔만 1만7000여 명, 그 식솔에 딸린 1차 협력업체 식구까지 합하면 14만 명이 넘는다. 이걸 나 몰라라 했다간 나라가 뒤집히고, 권력이 바뀔 수 있다. 정치권에서 2000억원을 줍네, 6500억원을 지원하네 선심을 쓰는 것도 그래서다. GM도, 산은도 그걸 잘 안다.

이쯤에서 대우의 역(逆)입양을 생각해볼 때다. GM에게서 다시 대우를 찾아오자는 거다. 일단 산업은행이 대우를 양육하되 5년 내지 10년 후 적당한 시점에 국내외의 좋은 부모를 찾아주는 것이다. 세금을 집어 넣을 명분도 생긴다.

내친김에 한국의 자동차 산업 구도를 다시 그려보는 것도 괜찮다. 마침 대우의 동생 쌍용도 애물단지로 전락해 있다. 중국 부모에 입양됐다 버림받았다. 쌀 한 톨이 없어 굶어 죽을 판이다. 둘을 합하는 것도 생각해봐야 한다.

둘을 합치기로 하면 실보다 득이 많다. 당장 GM과의 버티기 싸움에서 유리하다. 현대차의 독주를 막아 소비자에게 득이 될 수 있다. 고용도 유지할 수 있다. 자동차 한국의 입지도 강화할 수 있다. 혹 아는가. 10년 뒤엔 대우가 ‘버린 자식’의 설움을 이겨내고 세계 최고의 자동차 가문으로 거듭나 모국에 효도할지.

이정재 중앙SUNDAY 경제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