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수 교수 "아직도 정 장관 청탁 개입 확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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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수 성균관대 교수도 5일 오후 청와대의 인사청탁 조사 발표와 관련해 한국연극협회 홈페이지를 통해 입장을 밝혔다. 정교수는 "조사 주체의 공정성을 기대할 수 없다"며 "아직도 정장관의 청탁 개입을 확신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청와대 진정서에서 인용한 정권 실세들과 관련한 장안에 파다한 인사 압력 소문에 대해서는 아무도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정교수가 남긴 글의 전문.

아래의 글은 오늘 청와대의 발표를 듣고 최초로 문제를 제기한 본인의 입장을 밝히기 위하여 작성한 글입니다. 먼저 연극인 여러분께 알려드리고 또 수많은 언론을 일일이 개별적으로 상대하여 취재에 응하기도 어려우며 또다시 기자회견을 열어서 수선을 떨고 싶지도 않아서 이곳 연극협회 게시판에 올린 뒤 제게 연락하는 모든 언론사에 이곳 게시판을 방문하도록 하기 위하여 여기에 글을 올립니다.

아울러 본인이 이번에 문제 제기를 한 것은 순전히 대학교수 개인 자격으로 한 것이지 연극계와는 무관함으로 혹시 이번 일이 연극계에 누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지난 3일에 열린 연극협회 이사회에 출석하여 이번 일이 마무리될 때까지 이사회에 출석하지 않을 것이며 협회의 공적 업무에 일체 간여하지 않을 것임을 알려드렸습니다.

청와대의 인사청탁 관련 조사 결과 발표를 듣고

정진수(성균관대 교수)

오지철 전 문광부차관을 통한 김효씨의 본인에 대한 인사청탁과 관련한 청와대의 조사결과가 발표되었다. 정동채장관이 청탁에 '개입한' 증거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 핵심이다. 뒤집어 말하면 개입하지 않았다는 증거도 없는 것이다. 과연 증거를 찾기 위하여 얼마나 어떤 방법으로 애썼는지는 알 수 없으나 서영석 써프라이즈 대표가 "설사 사실이라 하더라도 사실이라고 말 할 수 있겠느냐"고 한 명언처럼 이미 정장관이 '전면 부인'한 상황에서 설사 증거를 찾았다 하더라도 이를 공표할 수 있으리라고 믿지 않는다.

우선 조사의 주체에 공정성을 기대할 수 없다. 일부에서 제안하듯이 관련 당사자들의 최근 몇 달 동안의 통화기록을 공개하고 본인의 제안대로 기자들이 배석한 가운데 관련 당사자 전원이 거짓말 탐지기 앞에서 진술한다면 '진실'을 어느만큼 밝혀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마음만 먹으면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본인은 정장관의 청탁 개입 여부를 가려내는 데에는 큰 관심이 없다. 이 일이 일국의 한 장관을 마녀사냥하기 위한 데로 초점이 맞춰지는 것 자체를 경계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관련 당사자 모두가 시인하고 있는 '팩트'만을 추려놓고 보자. 오 전 차관과 김효씨 모두 본인을 만났고 만나서 임용 청탁을 했으며 그 과정에서 정장관과 서대표를 거명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정장관이 실제로 개입했느냐 아니냐는 볼륨의 문제일 뿐이다. 이것만으로도 이는 우리 사회에 커다란 경종을 울려주며 참여정부의 도덕성을 심히 의심케 하는 '사건'이라고 믿는다. 다른 정권도 아니고 개혁의 깃발을 펄럭이며 구태(舊態)를 목청껏 질타해온 이 정권에서 보여진 이 풍경은 우리 모두 너무나도 익숙하게 보아왔던 그 풍경 그대로 아닌가. 심지어 뒷마무리까지! 날씬하게 꼬리 자르고 달아나는 그 정경까지 고 ̄대로 닮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 중앙부처의 차관은 '가볍게' 청탁했을 뿐이라고 발뺌하고 정의의 사도(使徒)로 알려진 유시민의원은 "임용 지원을 해놓고 청탁 전화 한 두번 안 하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 이까짓 것이 무슨 기사거리가 되느냐"고 또 다른 명언을 '가볍게' 친한 기자에게 농담 삼아 던질 정도에 이르러는 이 사회 권력층의 도덕 불감증이 어느 수준에 이르렀는지 심히 우려할 밖에 없다.

본인은 이들이 과거에 목숨을 걸고 민주화 투쟁에 나서 이를 달성했고 이제 정권까지 움켜쥔 마당에 이르러 게걸스럽게 내 몫을 차지하려는 모습을 굳이 탓하지 않는다. 본인은 이들이 그런 스스로의 모습에 계면쩍어 하기도 바라지 않는다. 그들에겐 그럴 권리(?)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나 말이다. 여태껏 누린 것도 없이 뒷짐 지고 가만히 있는 사람들까지 깡그리 싸잡아서 '보수, 기득권, 수구, 꼴통'으로 몰아붙이는 것만은 참을 수 없다. 너희들에게 그런 권리까지 주지는 않았다. 저희끼리나 실컷 퍼먹으면 될 일이지 못 먹는 남들에게 욕설까지 퍼붓는 '코드'(code)는 조폭 세계에도 없다. 부디 실력과 자질과 더불어 최소한의 인품이나마 갖춰주기를 바란다. 가능한 일일지는 모르나.

이번 일을 자청해서 터뜨린 본인도 각오는 했지만 온갖 음해와 모략에 시달리고 있다. 우선 사원(私怨)은 있을 수 없다. 관련자 어느 누구와도 친분이 없다. 정장관은 그분의 말대로 일면식도 없으며(없었기 다행이지) 서대표는 그런 사람이 존재하는 줄도 몰랐다. 정권에 대한 불만, 그중에도 감투자리 하나 못 얻어먹어서 나온 불만 때문이라는 얘기는 더 ̄럽게 치사하다. 본인은 여태껏 교직 이외에 어떤 공직도 맡은 바도 없고 그러려고 애쓴 적은 더더구나 없으며 정권 출범 직전에 인수위에 나와 달라는 제안도 사양했다. 심지어 지난 총선 때에는 모 정당의 관계자로부터 비례대표 후보로 나와 달라는 제안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그보다도 본인의 연극 인생에서 가장 큰 바람으로 10년 넘게 공들인 나머지 지난 2001년에 성균관대에 신설된 연기예술학과를 맡고 있는 동안은 설사 장관 아니라 총리 자리를 준다 해도 움직일 수가 없다. 자격도 없지만 싫어서가 아니라 우리 학과에 전임 교수가 아직도 본인 혼자이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양식을 갖춘 교수라면 어찌 학과를 텅 비우고 떠날 수 있단 말인가. 그 때문에 마지막 남은 연구년도 못 찾아먹고 있다. 그리고 이 일이야 말로 본인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믿고 이런 지위를 맡겨준 대학에 감사하며 성심을 다하여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내 학생들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기 바란다. 이런 학과에 어느 누구의 청탁이 있다 해도 아무나 교수로 끌어들일 수는 없다.

끝으로 본인은 아직도 정장관의 청탁 개입을 확신하고 있다. 이미 보도된 대로 오 전 차관이 본인을 만났을 때 정장관이 그에게 "문화부내에 정교수를 잘 아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어서" 왔다라는 말과 "당분간은 차관으로 더 있어 달라"고 했다는 말과 오 전 차관이 본인에게 "다음에 장관을 만날 자리를 주선하겠다"고 한 말 등으로 미루어 봐서 어떤 형태로든 둘 사이에 코뮤니케이션이 있었으리라고 믿으며 대화 당시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오 전 차관은 물론 이런 말을 본인에게 했다는 것을 이제 와서 부인하고 있지만, 또 그럴 수밖에 없겠지만, 했다면 이는 문맥으로 보아서 오 전 차관이 본인을 회유하기 위해 저 혼자 거짓 꾸며낸 말일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 말을 곧이듣고 본인이 청탁을 들어준 뒤 후일 '아무 영문 모르는 청렴한' 장관을 만나 생색이라도 내는 날이면 어찌 될 것인가? 차관이 그 정도로 바보란 말인가? 오늘 발표에서 느닷없이 심광현 예종 영상원장이 배후 인물로 등장했는데 그게 사실이라 해도 차관이 곧 부임할 예정인 장관에게 직접 확인하지 않았다는 것은 전혀 납득할 수 없다.

그러나 본인은 여전히 정장관의 개입 여부가 중요하다고 보지 않는다. 그것은 워낙 10분의 1을 좋아하는 이 정권의 사고일 뿐 설혹 정장관이 개입 사실을 인정하고 장관 자리에서 물러난다 하더라도 또는 역으로 그의 결백이 입증된다 하더라도 바로 그 순간에 우리나라는 밝고 깨끗하고 희망찬 사회로 뒤바뀌는 것이 아니다. 본인이 청와대 진정서에서 인용한 정권 실세들과 관련한 장안에 파다한 인사 압력 소문에 대해서는 아무도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다. 이런 일들이 과연 여기에 그친 일들일까? 이렇다할 친분도 없고 자기네 산하 기관도 아닌 사립대학의 인사에마저 이렇게 스스럼없이 청탁을 해댈 정도면 나머지는 불을 보듯 훤한 일이 아닌가? 더구나 과거에 청문회 스타로 명성을 날렸던 노 대통령이 이 정도의 조사 결과를 보고 받고 만족해서 발표토록 했다면 여러 모로 걱정스럽다.

더 이상 이 추악한 현실을 일시적으로 호도하기 위하여 또 다른 희생양을 찾기 위해 허둥대는 철면피들의 푸닥거리를 보고 싶지 않다.

디지털뉴스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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