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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제대로 된 신용회복 지원이 필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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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경기침체 여파로 개인워크아웃 상담과 신청이 급증하고 있다. 정부는 나름대로 채무를 조정받을 수 있는 방법을 다양하게 제시하고 있다. 신용회복위원회의 사전 채무조정(프리워크아웃)이나 신용회복기금의 전환대출(환승론), 그리고 기존의 개인워크아웃이나 시중은행·저축은행들이 독자적으로 시행하는 프리워크아웃까지 합치면 그 종류는 대폭 늘어난다. 특히 4월 13일부터 시행되고 있는 프리워크아웃은 신용회복 지원 대상에서 빠져 있는 3개월 미만 연체자들이 지난해 하반기 이후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생긴 제도다.

이처럼 채무자들이 빚 부담에서 벗어나 재출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신용갱생형 프로그램이 계속 도입되고 있으나 이것이 국민의 신용의식만 저하시키는 게 아닌지 사뭇 걱정스럽다. 최근 워크아웃 신청자보다는 신용의 막장으로 여겨지는 개인파산 신청자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개인파산을 당하면 공법상·사법상으로 심각한 불이익을 받는다. 그럼에도 개인파산 신청자가 급격히 늘고 있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우선 제도적 차원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통합도산법 시행, 파산 절차의 간소화 및 면책허가율 상승 등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통합도산법은 파산자의 소액 임차보증금에 대한 압류 예외 범위를 늘리고, 파산과 면책을 동시에 신청함으로써 조기 면책이 가능하도록 하는 등 파산 신청자의 권익신장을 도모해 왔다. 이렇게 파산 절차가 간소화되면서 편의성이 향상되고 파산자에 대한 면책허가율이 77%(2002년)에서 94%(2008년)로 계속 상승됐다. 또한 법원에서 처리된 면책사건 중 채권자의 이의가 받아들여진 것은 극소수(2008년 1%)에 불과해 개인파산신청은 곧 면책이라는 모럴해저드의 공식이 만연되고 있다.

주변 환경도 일조하고 있다. ‘아직도 빚을 갚으십니까’라는 문구는 법원 주변은 물론 길거리나 대중교통, 그리고 인터넷에서도 흔히 접하는 광고다. ‘빚 갚지 말라’고 권하며 빚 독촉에 시달리는 채무자들을 끌어들이는 광고인데, 실제 일부 변호사나 법무사의 과당 경쟁은 채무자의 신용의식을 약화시켜 파산 신청자의 증가 요인이 되고 있다.

채무자의 의식도 문제다. 급할 때는 자신의 지급능력을 감안하지 않고 신용대출을 받은 후 문제가 생기면 곧바로 개인파산 신청을 해버리는 경우다. 이런 개인회생이나 파산신청은 건실한 고객 및 금융사의 부담으로 이어진다. 특히 과소비형 파산의 증가는 신용대출 시장을 위축시켜 정말 지원이 절실한 서민들을 생활고형 파산으로 내모는 효과를 낸다.

이제 이를 방지하기 위한 대책이 시급하다. 먼저 악의적인 채무자를 걸러내기 위해 전자 재산조회 시스템 활용을 통한 법원의 채무자 재산조회 의무화가 추진돼야 한다. 다음으로 법원의 면책결정 후에도 일정 기간 복권 유예기간을 두는 등 파산자의 불이익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각종 매체를 통해 이 같은 상황을 적극 홍보하고 철저한 신용교육을 통해 건전한 회생을 도모해야 한다.

채무자들이 빚 부담에서 벗어나 재출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신용회복지원 프로그램은 당연히 필요하다. 그러나 그런 지원책들이 채무자들의 신용의지가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남발되면 사회적으로 모럴해저드가 만연되고 그 비용은 고스란히 성실한 국민의 몫이 된다.

이명식 상명대 경영대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