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화의제도 개선 시급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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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금융경색의 여파로 기업파산이 줄을 잇고 있으나 일부 기업은 기존의 화의제도가 지닌 보호망을 부실을 은닉하는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

그 결과 부실경영의 부담이 은행으로 귀착되고 이는 은행의 신용도를 더욱 하락시켜 금융경색을 다시 심화시키는 악순환이 되고 있다.

이같은 부실의 고리를 끊으려면 기업화의제도가 개선돼야 하고 같은 맥락에서 법정관리제도의 대폭 정비도 동시에 이뤄져야 할 것이다.

금융계 자료에 따르면 부실기업들의 화의신청건수는 지난해 9월 이후 연말까지 4개월간 서울지법에 접수된 것만 54건으로 96년의 4건에 비해 14배 가까이 늘어났다.

화의는 원래 중소기업들이 파산을 피하기 위한 제도로 이용해 왔지만 지난해 진로그룹이 이용한 뒤로는 기업규모와 관계없이 경영부실의 탈출구로 이용돼 왔다.

이에 따라 상당수 은행들이 은행당 평균 30~40개에 달하는 거래기업들과 화의절차를 진행중이라고 하는데 이는 결국 은행의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일단 화의가 신청되면 부실경영을 한 기업에는 특혜금리가 적용되지만 은행은 여전히 예금에 대해 높은 이자를 지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해외차입분이나 한국은행 지원자금에 높은 이자를 지급하면서 대출금의 이자를 제대로 못 받는다는 것은 기업부실을 은행부실로 시차를 두고 이전하는 것이기 때문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화의제도가 갖는 이런 맹점 (盲點) 을 고치자면 기본적으로 기업파산제도의 절차적 효율성과 전문성을 높이되 가급적 기업재건율을 제고하는 방향으로 운용해야 한다.

이를 위해 기업정리절차의 개시기준과 대상기업 선정기준을 명백히 하고 기업의 크기나 부도의 파장보다 과거의 책임과 장래의 경제성을 판단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부실경영에 대해서는 엄격한 대가를 지불하게 함으로써 기업경영에 일종의 신호를 제공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파산법원을 설치하고 대상을 더 엄격히 정해 화의를 도피수단으로 이용하는 도덕적 해이 (모럴 해저드) 를 막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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