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칼럼] 국제통화체제 어떻게 바꿔야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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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중국과 유엔은 새로운 국제통화체제를 요구하고 있다. 이는 국제통화기금(IMF) 개혁의 최우선 과제가 됐다. 요구의 핵심은 간단하다. 장기적으로 국제통화체제가 단일 국가의 화폐로 유지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미 반세기 전 경제학자 로버트 트리핀이 주장한 것이다. IMF도 이런 문제를 알고 1960년대 특별인출권(SDR)을 고안해 70년부터 발동시켰다.

달러 기축통화제는 세 가지 구조적 결함이 있다. 첫째, 미국을 제외한 재정 적자가 심한 나라에 큰 부담을 줬다. 기축통화국의 지위를 지닌 미국은 다른 국가에 부채를 떠넘기며 재정 적자 부담을 해결해 왔다. 둘째, 불안정하다. 기축 통화가 미국의 거시경제 정책, 국제수지, 재정 적자 등에 쉽게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세계는 달러 가치와 미국의 국제수지·재정에 따라 심한 경기 변화를 겪었다. 최근 중국 중앙은행 총재가 강조한 대로 달러는 국제 결제 수단으로서의 안정성을 잃었다. 셋째, 불공평하다. 달러 본위제는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자본과 자원의 이동을 촉발시켰다. 세계 금융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개발도상국들이 달러를 모아야 했기 때문이다. 중국을 제외한 개발도상국들은 2007년 말 현재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20.6%를 외환으로 보유하고 있다. 일본을 제외한 대부분의 선진국이 2.6%인 것을 보면 이는 불공평하다.

그렇다고 각국 통화가 저마다 기축통화가 되려고 경쟁하는 것도 해결책이 못 된다. 각국 통화 간 환율과 유동성이 불안정한 게 가장 큰 이유다. 그래서 각국 통화의 유동성과 교환 가능성이 부족할 때 IMF 등이 각국 통화를 보증하는 새로운 국제통화체제가 필요하다. 이는 SDR을 새로운 기축 통화로 삼으면 가능해진다. SDR이 기축통화가 될 경우 위기 때 IMF가 신속하게 자금을 제공할 수 있다. 각국 중앙은행이 대규모로 자금을 공급하는 것과 똑같은 방식이다. 그리고 소수 국가의 신용을 바탕으로 어려운 나라에 돈을 빌려주는 현행 IMF 방식보다 낫다. 몇몇 국가에 의존하지 않는 다국적 자금조달 체제이기 때문이다.

SDR이 성공하려면 개발도상국들이 IMF 자금 지원을 좋은 ‘보험’이라고 인식해야 한다. 그러면 개발도상국들이 외환 보유액을 줄일 수 있다. 그리고 IMF는 과거처럼 과도한 조건을 달지 말고 위기에 빠진 국가에 신속하게 대출해 줘야 한다. IMF는 3월부터 위기예방 목적으로 유동적인 신용한도를 만들며 SDR 체제로의 전환과정을 밟고 있다.

또한 IMF 창설 초기 존 케인스가 제안한 당좌대월 약정(overdraft facility)을 생각할 만하다. 이는 회원국에 예치금 이상의 수표를 발행할 권리를 주는 것과 비슷하다. 보완적으로 국가들이 보유한 외환 자산을 SDR로 교환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는 80년대 프레드 버그스텐 미국 국제경제연구소(IIE) 전 소장이 제안한 대체계정(substitution account) 방식과 같다. 외환을 IMF에 예탁하고 이를 담보로 SDR을 취득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제 국제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금융 규제뿐만 아니라 국제통화체제 개혁으로 의제를 확대시킬 때다. IMF 개혁은 이 작업의 시작이다.

호세 안토니오 오캄포 전 유엔 사무차장
정리=이승호 기자 ⓒ Project Syndic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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