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남자동성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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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얼마전 어느 40대 소설가로부터 직접 들은 체험담이다.

'미남' 인데다 소설 잘 쓰고 마음씨까지 착한 그 소설가의 유일한 흠은 술이 좀 과하다는 점이었다.

어느날 그는 어떤 문학행사에 참석해 대낮부터 술잔을 기울이다 2차, 3차로 이어져 밤이 이슥해 몸을 가누지 못하게 돼서야 동료들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택시를 탈 수 있었다.

집으로 향하던 중 그는 잠시 찬바람을 쐴 요량으로 서울역 앞에서 택시를 세웠다.

지하도입구의 계단에 기대앉아 깜빡 잠이 들었던 그는 누군가 어깨를 흔드는 통에 깨어났다.

30대 중반쯤 돼 보이는 준수한 청년이 '형님' 이라고 호칭하면서 근심스럽게 자신을 내려다보더란다.

전혀 낯선 얼굴이었지만 '잠시 쉬었다 가라' 는 청년의 권유를 받아들여 근처 여관으로 함께 들어갔다.

들어서자마자 소설가는 다시 깊은 잠 속에 빠져들었는데 뭔가 느낌이 이상해 정신을 차리고 보니 벌거벗겨진 자신의 몸을 역시 벌거벗은 청년의 몸이 덮치더란다.

호통을 치며 경찰관을 사칭해 가까스로 '위기' 를 모면했다는 소설가는 우리나라에도 '호모' 가 꽤 있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자신이 그들의 '대상' 이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고 끔찍해 했다.

유럽에서는18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남성 동성애자들은 보이는 즉시 처형했다는 기록이 있다.

프랑스의 한 신문은 1750년 7월6일자에서 동성애를 즐기다 발각된 18세와 25세의 두 노동자가 공개 화형당하는 장면을 생생하게 전한다.

그 이후 그런 극한적 처벌은 자취를 감췄지만 동성애자는 여전히 '인간괴물' 이거나 '이상 체질의 소유자' 로 취급돼 왔다.

지금은 다르다.

미국의 동성애자들은 87년 워싱턴에서의 동성애자 인권운동 행진을 기념해 매년 10월11일을 '숨어사는 동성애자들이 자신의 성적 (性的) 성향을 알리는 날' 로 정하고 갖가지 행사를 벌이고 있다.

그들의 한결같은 주장인즉 동성애자에 대한 일반적 인식이 긍정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대 한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에도 남성 동성애자들이 11만명이나 된다고 한다.

치료도 어렵고 억지로 막을 수도 없다지만 문제는 에이즈 등 성적 질병에 무방비 상태라는 점이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외국처럼 그들 스스로를 드러내게 하는 것이 효과적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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