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장기채로 전환 제대로 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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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현정부와 대통령당선자측은 만기도래하는 단기외채를 장기채로 전환하는 방법.내용 및 조건에 관해 월가의 채권금융단과 협상을 벌일 예정이다.

국제금융단측은 이미 정인용 (鄭寅用) 국제금융대사에게 자신들이 원하는 국채의 발행조건이나 정부지급보증의 기한과 내용을 통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단적으로 그들의 조건을 받아들이든가, 파산을 하든가 선택하라는 고압적인 자세다.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 정부나 당선자측 협상팀은 당장의 위험에 쫓겨 자손만대에 빚을 남기는 잘못을 범하지 말 것을 촉구하고자 한다.

민간기업의 외채를 정부가 지급보증한다는 방식 자체가 시장원리에 맞지 않고 민간기업과 금융기관의 잘못된 경영의 부담을 국민의 세금으로 무는 심각한 도덕적 해이 (moral hazard)가 존재한다.

더 나아가 국제금융단은 이번 기회에 한국 경제를 볼모로 잡아 이른바 빅 딜 (big deal) 이라고 부르며 크게 한건을 할 셈으로 하이에나떼같이 몰려들고 있다.

그들이 요구하는 조건이 가혹한 것으로 따지면 유례가 없다.

한마디로 이자율이 낮아서 장사기회가 없는 월가의 금융회사에는 한국을 벗겨먹는 것이 20세기의 마지막 사업기회로 여겨지고 있을 정도다.

여기에 무디스나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 (S & P) 같은 신용등급회사가 국제금융단에 유리하도록 계속 신용등급을 내리는 것도 우리에게는 치명적이다.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손 한번 써보지 못하고 몇십년 열심히 일해 모아둔 재산을 순식간에 내주는 꼴이 벌어질지 모른다.

루디 돈부시 미 MIT대 교수도 한국에 대한 채권은행단의 정부지급보증 요구나 고금리 수준은 지나치다고 비판하고 있다.

채권은행단과 협상에 나설 당선자측의 대표단은 다음과 같은 점에 유의해주기 바란다.

첫째, 정부의 지급보증이 불가피하다면 그것은 최소한으로, 그리고 기간도 최장 3년까지의 단기간에 국한돼야 한다.

둘째, 채권단이 요구하는 국채발행조건 특히 고금리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단기채를 빌려준 책임의 일부는 채권단에도 있으며 금리는 경쟁적 시장금리에 가까워야 한다.

셋째, 지급보증 및 고금리 협상과 동시에 금융산업 구조조정계획을 분명하게 전달해 국제사회를 설득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협상 전에 국내에서 정리해고나 부실금융기관의 조속한 정리같은 가시적인 조치로 뒷받침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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