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드러나는 외환위기의 경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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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잘 나가던 한국경제가 IMF의 구제금융을 받아야 할 정도로 삽시간에 악화된 것은 정말 미스터리다.

한국인 자신들은 물론 외국인들도 어쩌다 이 지경까지 됐느냐고 놀라움을 표시한다.

새 정부는 이미 경제위기의 원인과 사전 무방비를 규명하기 위한 청문회를 약속하고 있어 조만간 그 진상이 드러나게 되리라고 본다.

그런데 어제 오늘 사이 단편 (斷片) 적으로 보도된 외환위기의 경위만 봐도 벌써 국민은 경악을 금할 수 없다.

우선 김영삼 (金泳三) 대통령이 급박한 외환사정의 전모를 보고받은 것은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기 불과 열흘 남짓 전인 11월 초순이라고 한다.

더구나 보고자가 담당부서인 재정경제원이 아니고 '한 금융전문가' 라고 하니 더욱 놀랍다.

재경원이 사태의 심각성을 몰랐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강만수 (姜萬洙) 재경원차관의 '고백' 에 따르면 외환위기의 직접적인 시점은 한보.삼미 등 대기업이 부도를 낸 직후인 97년 3~4월, 장기적으로 파탄의 원인이 누적되기 시작한 것은 93년의 '반짝 호황' 시기부터라고 정부는 판단했다고 한다.

결국 '어쩌다 이 지경까지' 의 '어쩌다' 는 정부가 위기를 감지하고도 그것을 숨기거나 의미를 과소평가한 나머지 사전에 충분한 대책을 세우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정부가 위기의 진상을 숨긴 것은 타임지 (誌) 의 특집기사에서도 드러난다.

11월 중순 한국정부와 비공개리에 외환위기를 논의한 서머스 미 재무부 부장관에게 한국관료들은 외환보유액의 공개를 거부하는 바람에 클린턴 대통령이 金대통령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한국경제는 '근본적 수술' 을 받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한다.

지금까지의 경위를 종합해 보면 파국에 이른 경제사정이 국정의 최고책임자에게 뒤늦게 알려질 정도로 이 나라의 위기관리체제는 엉망이었다는 점이 드러난다.

그러나 지금까지 공개된 진상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정부는 외환위기에 이르기까지의 경위를 공개함으로써 후세에 길이 교훈과 경계로 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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