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 의화단 사건을 빌미로 러시아가 만주를 손아귀에 넣자 루스벨트 대통령은 만주 지역 진출에 빨간불이 켜진 것으로 보아 반러·친일 쪽으로 동아시아 정책의 기조를 잡았다. 그러나 1903년 알렌은 루스벨트를 향해 “영국과 일본의 이익을 위해 화덕에 있는 밤을 집는 어리석은 짓”이라고 정면으로 맞섰다. “일본이 계속 커나가면 태평양 지역 상업을 모두 지배하려 할 것이며, 세계무역에서 미국에 맞설 것이다.” 러일전쟁 직후 그는 일본이 미국의 적국으로 떠오를 것을 정확히 짚어낼 만큼 혜안을 가졌지만, 나라의 정책 기조를 바꿀 만한 힘을 갖고 있지 못했다. 1903년 초 그는 본국으로 떠나기 전 부인과 서기관 패독과 함께 찍은 사진을 남겼다. 한 계단 아래에 내려선 오른쪽 6척 장신이 알렌이다(사진).
1905년 1월 “우리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침략자에게 일격도 가하지 못하는 한국인을 위해 일본을 상대로 중재에 나설 수는 없다”며 루스벨트는 조미수호조약에 명시된 거중조정의 의무를 헌신짝처럼 내팽개쳤다. 그해 7월 미국은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맺어 필리핀과 조선을 맞바꿨다. 북한 핵과 미사일로 동아시아 정세가 요동치는 오늘. 스스로를 지킬 힘과 함께 우리 입장을 제대로 대변해 줄 역량 있는 미국 내 세력도 키워야 한다는 것이 실패의 역사에서 배울 교훈이 아닐까.
허동현(경희대 학부대학장·한국근현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