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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 방정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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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미국 연방 하원에서 3선 의원으로 활동 중인 테드 포(60·공화당)는 ‘스타 판사’ 출신이다. 텍사스주 휴스턴 지방법원에서 20년 넘게 일했던 그는 ‘창의적 판결’로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절도범에게 ‘나는 도둑이다’라고 적힌 알림판을 들고 피해 상점 앞에 서 있으라는 선고를 내리는가 하면, 폭력 남편에게는 시청 앞에서 아내에게 공개 사과하라고 했다. 범죄자에게 망신을 줌으로써 다시는 범행을 저지를 엄두를 못 내게 하겠다는 의도였다.

그가 유명인사로 떠오르면서 비슷한 판결이 잇따라 나왔다. 텍사스의 한 판사는 자녀를 학대한 아버지에게 “30일 동안 개집에 있든지, 감방에 있든지 둘 중에 하나를 고르라”고 선고했다. 조지아에선 코카인 흡입 후 핸들을 잡은 운전자에 대해 “집 안에 관(棺)을 두고 마약 중독의 대가를 곱씹어 보라”는 벌이 내려졌다.

이들 판결은 처음엔 박수를 받았지만 “인격에 대한 지나친 모독”이란 비판에 부딪혔다. 이런 현상은 판사에게 상당한 재량을 주는 미국 사법제도의 특성 때문인데, 이미 1940년대에 법철학자 제롬 프랭크가 사실주의적 관점에서 분석한 바 있다. 그는 재판 과정을 ‘S×P=D’라는 방정식으로 설명했다. 다양한 자극들(Stimuli)이 판사의 개성(Personality)에 가해져 판결(Decision) 내용이 결정된다는 얘기였다. 특히 자극에는 증거는 물론이고 언론의 논조나 재판 당시 판사의 기분도 포함된다고 했다. “누구에게 재판 받느냐에 따라 판결이 달라질 수 있다”는 불신이 바탕에 깔려 있다.

최근 우리 사회도 판사의 개성이 부각되는 분위기다. 중요 현안에 관한 판결이 나오면 해당 판사의 성향을 따지게 된다. 대법원이 이번 주초 ‘전국 법관 워크숍’을 연 계기는 신영철 대법관의 재판 관여 논란이었으나, 근본적인 원인은 판사들의 법 해석과 가치관 차이가 외부로 표출될 만큼 커진 데 있는 것 아닐까.

법원 내부의 의사소통을 원활히 하는 등 워크숍에서 제시된 개선 노력은 바람직해 보인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법관이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재판을 할 때, 양심이 갖는 의미를 되새겨보는 일이다. 법관의 양심은 아마추어의 개인적 양심이 아닌, 프로의 직업적 양심이어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법률에 대한 자신의 해석이 과연 옳은지, 다른 판사라면 어떤 결론을 내릴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한번 더 돌아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굳건해지는 것도 바로 그 언저리일 것이다.

권석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