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 문화전선 홍대앞…한때 '거품'인가 '반문화'꿈꾸는 시대 흐름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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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4면

문화의 흐름은 바뀐다.

물론 변화를 주도하는 것은 사람이다.

하지만 그렇게 특정 장소가 달라지고 있음을 알긴 하는가.

중앙일보는 지난 20일 선정 발표한 '97문화 새뚝이' 에 이어 '97문화전선 (前線) - 바로 이곳' 을 간다.

서울 마포구 동교동.상수동 일대, 그냥 '홍대앞' 이라고 불리는 여기는 어떤 곳일까. 우아하고 예술적인 낭만의 거리? 록카페등에서 신나게 몸을 흔들며 욕망을 분출하는 공간? 글쎄,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은데…. 현재의 홍대앞은 '언더그라운드 문화의 발원지' 라는 말이 가장 적절한 듯하다.

주류문화를 극복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려는 젊은 움직임이 꿈틀거리는 터전 말이다.

이 심장부에는 록음악이 있다.

홍대앞 록 문화의 성지 (聖地) 라 불리는 록클럽 '드럭' .94년 개장한 이곳은 라이브 공연 문화를 정착시키는데 결정적 공헌을 했다.

“아무 생각없이 춤만 춰대는 록카페가 싫어서 펑크록만 틀어주는 카페를 만들었어요. 그러다 보니 직접 연주해보겠다는 '펑크록 중독자' 들이 생겨 자연히 라이브 공연장이 되더군요.” 이석문 (37) 사장의 말이다.

홍대앞 록공연은 지난해 중반부터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재머스.프리버드.블루데빌 등 라이브 록클럽들이 속속 탄생했고 고스락.내귀에 도청장치.노브레인.삼청교육대 등 기발한 이름의 밴드들이 생겨났던 것이다.

TV를 장악하고 있는 댄스와 발라드음악에 식상한 젊은이들은 이곳으로 달려나왔다.

홍대앞 록클럽과 밴드에 관한 소식을 전하는 잡지 '팬진공' 편집인 김종휘 (31) 씨는 "가장 중요한 점은 '나도 할 수 있다' 는 의식의 확산" 이라고 말한다.

기량이나 음악적 완성도에서는 다소 떨어지나 아마추어 정신에 입각한 다양한 문화적 실험이 벌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이러한 모습은 음악에만 머물지 않는다.

올 6월 홍대앞 '언더그라운드' 에서 시작된 '10만원 비디오 영화제' 는 대표적인 예. 비디오영화 제작비조로 10만원의 상금을 내건 이 행사는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운 실험적 영상을 만들자는 취지에서 열리고 있다.

비디오테이프값과 배우로 출연하는 친구를 대접할 밥값만 있으면 영화 한편을 뚝딱 만들 수 있다는 매력 탓에 출품작이 늘고 있다.

최근 홍대앞의 두드러진 경향은 복합문화공간화다.

'언더그라운드' 와 지금은 없어진 '푸른굴 양식장' 이 대표적인 장소였다.

이곳에서는 록밴드의 라이브공연뿐 아니라 영상전.퍼포먼스.전시회 등이 열려 다양한 문화가 함께 공존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또 '여성전용 문화공간' 을 선언한 극장 '마녀' 는 전문적 복합문화공간의 의미를 갖는다.

이러한 추세는 차츰 번져나가는 분위기다.

서울 대학로.종로.화양리 등지에 라이브 연주를 하는 록클럽과 복합문화공간이 만들어졌고 지난 9월에는 부산에 '문화공간 반 (反)' 도 탄생했다.

최근 홍대앞 록클럽과 밴드들은 커다란 과제에 부닥쳐 있다.

독립음반 제작이 그것이다.

물론 '자우림' 과 같이 홍대앞 출신으로 주류에 편입되는 경우도 있으나 일반적인 경우 음반회사에서 상업적 성공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막나가는 록밴드' 의 음반을 제작하지 않을 것이므로 아예 독립적인 음반사를 만들자는 것이다.

지난해말 드럭에서 발매한 '아우어 네이션' 을 시작으로 올해 '록 - 닭의 울음소리' '원데이 투어스' 등이 발매되며 가능성을 내비쳤다.

이미 여러 록클럽들이 소속 밴드들의 음악을 묶어 음반을 준비중이고 독립레이블인 '인디' 와 '강아지 문화예술기획' 도 음반을 제작중이다.

하지만 현실적 어려움은 숱하게 많다.

'라이브 클럽 허용 문제' 는 대표적 경우. 현행 법규상 일반 업소에서 생음악을 연주하면 불법행위로 적발된다.

이로 인해 거의 모든 클럽들이 여러번 적발됐으며 일부는 영업에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다.

물론 홍대앞 문화의 '거품현상' 을 지적하는 시선도 존재한다.

이들은 이러한 문화가 패션처럼 한때의 유행에 그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내년을 지켜봐야 할 일이다.

어찌됐건 'IMF 시대' 라고 방 구들이 꺼져라 한숨만 쉬기 보다는 '지하세계' 에 모여 짱짱한 젊음을 발산하는 편이 정신건강에 낫지 않을까.

글 = 문석·사진 = 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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