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詩)가 있는 아침 ] - '폭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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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고은(1933~) '폭포' 전문

폭포 앞에서
나는 폭포소리를 잊어먹었다 하

폭포소리 복판에서
나는 폭포를 잊어먹었다 하

언제 내가 이토록 열심히
혼자인 적이 있었더냐

오늘 폭포 앞에서
몇십년 만에 나 혼자였다 하



제주의 섭지코지 가파른 벼랑 위에서였던가. 거센 해풍을 맞으며 풀을 뜯고 있는 말을 보았다. 말의 갈기는 사방으로 흩날리고 있었지만, 그 눈동자와 등과 목은 지극히 평화로웠다. 제가 뜯고 있는 게 풀인지도 잊어버리고 하염없이 대지를 향해 굽어져 가던 목선이여. '그토록 열심히 혼자인 적이'내게 있었던가 생각하며, 서럭서럭 풀뜯는 소리를 무슨 파도소리처럼 들었다.

나희덕<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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