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돋보기] “아이들 먹이려는 빵인데 …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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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시 홈페이지에 고발인이 올린 사진. 판매시작일(上)이 유통기한(下)을 넘겼음을 보여준다.

A씨는 지난 11일 천안의 H할인점에서 가족과 함께 쇼핑하던 중 ‘빵을 50% 할인 판매한다’는 방송을 듣고 식품매장으로 달려갔다. 매장에서는 한 개당 1400원짜리 빵을 절반 가격인 700원에 팔고 있었다. A씨는 빵을 좋아하는 아이들을 위해 다섯 개를 구입했다.

집에 돌아와 아이들에게 빵을 먹이기 전 별 생각 없이 유통기한을 살펴봤다. 그런데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다. 빵 다섯 개 모두 유통기한이 지난 제품이 아닌가. 세 개는 9일, 두 개는 10일까지였다. 유통기한이 1~2일 지난 제품이 버젓이 판매되고 있었던 것이다. 빵 봉지에 제조사가 찍은 유통기한 날짜가 선명했다. 그러나 판매사인 H할인점 측은 바코드에 판매 가능한 걸로 표기했던 것이다. 빵을 살 때 판매사인 H할인점를 믿고 제조사의 유통기한을 확인 안 한 게 잘못이었다.

A씨는 올 1월에도 같은 매장에서 유통기한이 지난 제품이 진열된 것을 보고 고객센터에 이 같은 사실을 알리고 천안시에도 민원을 제기했었다. A씨는 똑 같은 일이 되풀이되자 대기업 유통점의 횡포를 그대로 두고 볼 수 없었다. 이런 일이 방치될 경우 시민의 건강을 위협할 수 있다는 생각에 정식으로 고발해 개선시키려는 결심을 하게 됐다.

A씨는 13일 천안시 동남구청에 빵 5개와 자신이 찍은 사진을 증거품으로 제출했다. 고발 내용은 유통기한이 지난 제품을 판매한 유통점을 처벌해달라는 것이었다.

고발 과정에서 A씨는 황당한 일을 겪었다. 고발 하루 전날인 12일 오후 H할인점 직원 3명이 자신의 집을 찾아 온 것이다. “어떻게 가르쳐주지도 않은 내 주소를 할인점 직원들이 알았는지 모르겠다” 그는 “민원 제기 과정에서 알려준 개인정보가 유출돼 사생활 침해를 당했다”며 천안시에 공식 항의했다.

동남구청 위생지도팀 이기영 담당은 “민원인의 고발을 접수한 뒤 증거물·사진 확인 등의 절차를 거쳐 15일 H할인점 측에 공문을 보냈다”며 “이달 30일까지 이의 의견을 제출하도록 명시한 만큼 H할인점의 대응을 보고 처벌 수위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담당은 “식품위생법상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을 판매할 경우 해당 식품매장 전체가 7일간 영업정지 처분을 받게 된다”며 “원칙적으로는 영업정지를 당해야 하지만 대신 하루 매출액을 산정해 과징금을 부과하는 제도가 있어 대부분 이 규정을 적용 받는다”고 말했다.

H할인점도 7일간의 영업정지 대신 최대 1162만원의 과징금 납부를 택할 것으로 보인다. 영업 정지 처분을 받으면 7일간 식품매장 1개 층 전체가 문을 닫아야 하기 때문이다.

H할인점 관계자는 “17일 공문을 받았다. 이의 제기 기간이 30일까지인 만큼 본사와 협의해 이의 의견서를 제출할 것”이라며 “아직 실물을 보지 않았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말해줄 게 없다”고 해명했다.

신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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