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미국 뒷마당 중남미’ 복원 외교에 나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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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오바마는 16일 멕시코 방문, 17~19일 트리니다드 토바고에서 열리는 미주기구(OAS) 정상회의 참석을 계기로 미국의 영향력 회복을 노리고 있다. 오바마는 중남미 국가에서 높은 자신의 인기를 앞세워 확 달라진 미국을 선보일 전망이다.


◆오바마, 새 시대 선언=오바마는 16일(현지시간) 멕시코시티에서 펠리페 칼데론 멕시코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다. 미국 대통령이 멕시코를 방문한 것은 1997년 빌 클린턴 이후 12년 만이다. 오바마는 “미국과 멕시코 간에 새로운 협력과 파트너십의 시대가 열렸다”고 선언했다고 뉴욕 타임스(NYT)가 보도했다. 그는 “멕시코 마약조직 총기의 90%가 미국에서 들어온다”며 “미국은 멕시코가 벌이고 있는 마약과의 전쟁에 동참하겠다”고 약속했다.

멕시코의 마약이 미국으로 흘러드는 것을 막기 위해 멕시코 국경 순찰을 강화하고, 헬기를 보내 멕시코 경찰의 마약 소탕 작전을 돕기로 했다. 또 미주 대륙 내 불법 무기 거래 금지조약을 미국도 받아들이도록 의회에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이 조약은 OAS 회원국 상당수가 98년 발효시켰으나 미국은 전미총기협회(NRA) 등의 로비로 의회 비준을 받지 못하고 있다.

◆중남미, “관계 재설정” 요청=오바마는 17일 오전 OAS 정상회의(34개국 정상 참여)가 열리는 트리니다드 토바고의 수도 ‘포트오브스페인’에 도착했다. 중남미 정상들은 오바마에게 경제 지원을 확대하고 쿠바에 대한 경제 제재를 풀어 줄 것을 요청할 예정이다. 또 미국과 중남미 관계를 재설정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중남미의 맹주인 브라질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대통령은 “미국은 남미에 대한 시각을 바꿀 필요가 있다”며 “우리는 민주적·평화적 대륙인 만큼 미국은 이 지역을 단지 마약 거래나 조직 범죄의 온상이라고 여기기보다는 생산적이고 발전적인 방향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주문했다. 오바마도 화답했다. 그는 16일 마이애미 헤럴드에 실린 기고에서 “미 정부는 미국과 중남미가 공동의 번영과 안보를 기반으로 폭넓은 파트너십을 재설정하고 유지하도록 힘쓰겠다”고 약속했다.

◆쿠바, “미국과 대화 희망”=라울 카스트로 쿠바 대통령은 16일 “우리는 미 정부에 공식 또는 비공식적으로 인권과 언론 자유, 정치범 등 모든 문제를 논의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고 말했다. 미국과 쿠바가 외교 관계를 단절한 61년 이후 쿠바 최고지도자가 밝힌 대화 제의 중 가장 강력한 것이라고 AP통신은 평가했다.

이 제의는 오바마가 13일 쿠바계 미국인의 쿠바 송금과 여행을 허용하는 등 47년간 이어진 대쿠바 봉쇄 정책을 일부 해제한 뒤 나온 것이다. 칼데론 멕시코 대통령도 오바마와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미국의 쿠바 고립과 경제 제재는 변화를 이끌 좋은 조치가 아니다”고 말했다. 오바마는 “50년간 냉각됐던 관계가 하룻밤에 풀리지는 않을 것”이라며 점진적으로 관계 개선할 뜻을 밝혔다.

◆남미 좌파국, 미국 비판=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16일 베네수엘라 북부 쿠마나에서 쿠바·볼리비아·온두라스·니카라과·파라과이 등 좌파 정상들과 회담하고, 쿠바 문제를 OAS 정상회의의 핵심 의제로 삼겠다고 밝혔다. 쿠바는 62년 미국의 압력으로 OAS 회의 참석 자격을 박탈당했으며 이번 정상회의에도 초대받지 못했다.

차베스는 “OAS는 워싱턴의 입맛에 맞춰 남미를 종속시키려는 미국의 외교 정책을 도와줬다”며 “OAS를 대체하는 기구를 신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미국에 대한 항의로 OAS 정상회의에서 성명서를 채택하는 데 반대하겠다”고 밝혔다.

정재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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