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노트북을 열며

상조업체 불법 행위 보고만 있을 건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47면

한 상조업체가 인터넷 예약을 싹쓸이했다. 조만간 돌아가실 회원을 위해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예약한다. 그런 다음 회원이 사망하면 허수 예약을 취소하고 재빨리 사망한 회원 이름으로 재예약한다. 일반인들은 예약 취소로 인해 언제 빈자리가 날지 모르지만 상조업체는 취소 시간에 맞춰 쉽게 그 자리를 차지했다. 상조업체는 이런 식으로 회원들이 사망하면 ‘불편 없이’ 3일장을 치를 수 있게 서비스했다. 상조업체는 인터넷에 접속해 예약을 따낸 아르바이트생에게 건당 3만~5만원의 수당을 줬다.

벽제화장장을 예약하기가 어렵다는 것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동안 비리가 있을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지난해 9월부터 6개월 동안 벽제화장장의 예약 취소는 5298건에 이른다. 하루 28건 꼴이다. 23기의 화장로를 모두 가동할 때 하루에 처리할 수 있는 시신이 83구인 것을 감안하면 예약 취소율이 34%나 된다. 장례 장소나 일정을 바꾸는 것이 흔하지 않은 것을 생각하면 조직적으로 예약했다가 취소한 것이 틀림없다.

화장장 불법 예약이 기승을 부리는 것은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가 그 원인이다. 화장에 대한 인식이 바뀌면서 2001년 38.2%이던 화장률이 2007년 58.9%로 올라갔다. 하지만 서울의 화장로는 수요를 따르지 못한다. 그런데도 상조업체는 ‘장례의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책임진다’고 내세워 회원을 모집한다. 화장장을 예약하지 못하면 장례 일정을 확정하지 못하게 되고 영업에 타격을 받는다. 2007년 말부터 상조업체가 급증, 전국에 400여 개 회사가 난립하는 상황에서 무리수를 둘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런 장난의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에게 돌아간다. 원하는 날짜에 장례를 치르기 위해서는 시신을 모시고 다른 지역의 화장장을 찾아가야 한다. 수원이나 성남은 그나마 가까운 편이다. 여기에서도 자리가 없으면 충주 등지까지 가야 한다. 화장장 비용도 크게 올라간다. 서울시민이 벽제화장장을 이용할 때 내는 이용료는 9만원. 그러나 수원·성남 화장장에서는 100만원씩 내야 한다. 돈도 돈이지만 고인에게 못할 짓이다. 이렇게라도 안 되면 4일장을 치러야 한다.

화장장이 혐오시설이라는 인식 때문에 화장장 건설이 몇 년간 미뤄져 오면서 상조업체의 불법 행위가 등장했다. 서울시는 가짜 예약을 막기 위해 컴퓨터 보안시스템을 강화한다고 한다. 그러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원지동 추모공원이 예정대로 7월에 착공해 2012년 가동하기 전까지는 유사한 불법행위가 계속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실토한다. 필요한 화장장을 제때 짓지 않아 생기는 불편을 시민 모두가 나눠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김상우 사회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