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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Leisure] 엄마, 나 게 잡았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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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벌체험은 특별할까?

딱히 그렇지도 않다. 갯벌체험을 조개잡이나 잡은 조개를 구워먹는 것 정도로 생각한다면 말이다. 갯벌체험 명소로 알려진 곳일수록 더욱 그렇다.

씨알 굵은 조개는 수없이 훑고간 '체험객'들 손에 거덜이 났고 뙤약볕에서 손톱만한 조개 몇 개 캐다가 두 손을 들기 십상이다.

하지만 양껏 조개를 캐겠다는 욕심만 버리면 갯벌은 엄청난 체험학습장이다. 잠시만 고개를 숙여 발 주변을 살펴보시라. 멀리서 보면 아무 것도 없는 것 같던 뻘이 사실은 수많은 생명의 바지런한 움직임으로 가득찬 생태공원임을 알게 될 것이다.

◆ '맛' 창고, 진산포구 갯벌=충남 태안반도는 독특한 지형과 수려한 경관 때문에 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곳이다. 천수만이나 가로림만처럼 내해(內海)를 이루는 거대한 만은 접어두더라도 해안선이 육지를 살짝 파먹고 나간 자리에 들어선 포구나 백사장은 수를 세기 어렵다.

태안군 남면 진산포구도 그런 포구 중 하나다. 태안읍에서 77번 지방국도를 따라 20분쯤 가다보면 '장길산 촬영세트장'과 화훼단지 간판이 나오는데 여기서 우회전하면 호젓한 어촌이 나선다. 간조 때면 건너편 채석포구와 진산포구를 갈라놓던 만에 물이 빠지고 폭 5㎞의 너른 갯벌이 통째로 드러나는 곳. 물때가 좋으면 조그만 포구에 1000명 넘는 체험객이 몰린다. 진산리 어촌계(011-235-2501)에서 성인에게만 3000원을 받고 운영한다.

물이 빠지면 제일 먼저 돌밭이 드러난다. 얼핏 보면 평범한 돌무더기지만 바지락 씨(종패)를 뿌린 곳이다. 종패장의 바위를 들춰보면 회색 분화구 모양의 고랑따개비가 다닥다닥 붙어있고 그 주변을 얼쩡거리던 새끼손톱만한 게들이 질겁을 하고 달아난다. 바지락은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 수도 없이 박혀 있을 것이다.

종패장을 지나면 본격적으로 모래 함유량이 많은 갯벌이 펼쳐진다. 갯벌 표면에서 가장 개체수가 많은 종은 고둥류. 그냥 널브러져 있는 것 같던 그 많은 고둥들도 가만히 보면 모두 꼬물꼬물 움직이고 있다. 그 중 씨알 굵은 것들의 움직임은 특리 날렵하다.

고둥이 날렵하다니! 뒤집어보면 이유를 알 수 있다. 껍질만 고둥일 뿐 그 속살을 파먹고 버젓이 살고 있는 집게가 주인이다. 겁이 많고 눈이 좋은 집게가 고둥 껍질 밖으로 나오는 것을 보려면 한참 동안 숨소리도 죽이며 관찰해야 한다. 군데군데 모래갯지렁이가 내놓은 실꾸러미 같은 배설물과 콩알만한 게들이 숭숭 뚫어놓은 수많은 구멍도 눈길을 끈다. 볼품없고 징그럽다고? 사실 갯벌이 갯벌로서 기능하는 것은 모두 이런 저서(低棲)생물의 역할 때문이다.

진산포구의 매력은 역시 '맛'. 조가비가 길쭉해 대나무 마디 같은 모양을 한 조개다. 물이 빠지면 60㎝ 깊이로 모래를 파고들어가 숨기 때문에 캐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독특한 방법이 사용된다. 십자 모양으로 난 숨구멍에 맛소금을 뿌리는 것. 30초쯤 있으면 뽀글뽀글 기포가 오른다. 맛이 다시 밀물인줄 알고 나올 준비를 하는 것이다. 이어 혀처럼 느물거리는 맛살이 올라온다. 조심스레 잡아 쪼옥 하고 빼내면 끝. 구우면 쫄깃함을 잊을 수 없는 맛을 잡아도 잡아도 끝없는 것이 진산포구의 넉넉함이다.

◆ 갯벌체험, 이렇게=서해안과 남해안을 따라 갯벌은 수도 없이 많다. '체험'이 가능한 곳도 마찬가지. 그러나 갯벌의 유형과 지역에 따라 관찰할 수 있는 생물군이 약간 다르다. 어느 갯벌에서는 맛이 나고 어디는 바지락이나 동죽이 대세며 눈알고둥과 총알고둥, 풀게와 엽량게는 어떻게 다른지 조금만 공부하면 더 많이 보고 느낄 수 있다.

아무 때나 '체험'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갯벌이 속살을 드러내는 썰물 때에 맞춰야 한다. 해당 지역 어촌계나 소속 군의 관광과에 묻는 것이 가장 빠르다. 간조 정점을 중심으로 전후 2 ~ 3시간 정도 갯벌에 들어갈 수 있다.

가능하면 샌들과 챙이 넓은 모자를 준비하자. 특히 진흙 성분이 많은 갯벌에서 움직이는데는 샌들이 편하다. 맛이 나오는 갯벌이라면 소금 준비는 필수.

갯벌 중에는 어촌계가 독점적 권리(어업권)를 보장받은 영역이 있다. 종패장을 비롯해 어업활동을 위해 금지선을 쳐놓은 곳에는 들어가지 않는 것이 좋다. 방문객들은 한순간의 즐거움이지만 이들에게는 생계가 걸린 문제다.

태안=최현철 기자<chdck@joongang.co.kr>
사진=최승식 기자 <choiss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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