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대북정책, 혹독한 시험대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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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완성되지도 않은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의 대북 정책이 혹독한 시험대에 올랐다. 북한이 6자회담 참가를 거부하고 기존 합의 틀을 깨는 것은 물론 불능화가 진행 중이던 영변 핵시설마저 원상 복구할 것이라는 초강경수를 두고 나왔기 때문이다. 익히 보던 위기 고조 전술이지만 북·미 대화에 긍정적인 자세를 보여온 오바마 행정부의 출범 초기부터 미국을 몰아붙이는 공세 일변도로 나왔다는 점에서 예사롭지 않다. 로켓 발사로 시작된 일련의 강경 행동은 “이제 6자회담은 그만 접고 북·미 양자 대화로 모든 문제를 통 크게 해결하자”는 메시지를 노골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반면 미국은 6자회담을 깨뜨리려는 북한의 입장에 동조하지 않는다. 로버트 기브스 백악관 대변인은 14일(현지시간) “미국은 북한 및 주변국들과 6자회담을 통해 긴장을 완화하고 한반도에서 핵무기를 제거하기 위해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로버트 우드 국무부 부대변인도 “북한은 6자회담을 통해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받은 만큼 북한이 그러한 인센티브를 수용하길 원하느냐 않느냐는 결정을 내려야 하며 그것은 북한의 문제”라고 밝혔다. 미국은 북한을 최대한 이른 시일 안에 6자회담장으로 다시 불러내 대화 무드를 조성하고, 한편으론 북·미 고위급 대화를 통한 정치적 결단으로 핵·미사일 등의 현안을 타결 지으려는 기조다.

하지만 로켓 발사로 촉발된 단기적 국면에서 미국의 역할에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오바마 행정부는 출범 4개월이 되도록 대북 라인 정비와 정책 재검토를 끝내지 못한 상태에서 북한의 로켓 발사란 시험대와 마주쳤다. 그런 가운데 로켓 발사와 강도 높은 안보리 의장성명 채택으로 북·미 관계가 당장 급랭기에 들어가면서 미국이 의도대로 북한을 회담장으로 끌어내는 일조차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이와 달리 북한의 수순은 사전에 잘 짜인 시나리오를 따르고 있는 듯하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동국대 김용현(북한학) 교수는 “2000년 클린턴 행정부 때 조성됐던 북·미 관계 개선 분위기를 이어가지 못한 것을 ‘실기’로 평가한 북한이 이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면밀히 준비한 끝에 나온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워싱턴=김정욱 특파원, 정용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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