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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호 기자의 레저 터치] 63빌딩 계단 오르는 사람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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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면

서울 한화63시티, 그러니까 여의도 63빌딩에서 19일 흥미로운 행사가 열린다. 이름하여 계단 오르기 대회. 1층 로비에서 출발해 60층 전망대까지 모두 계단 1251개를 오르는 대회다. 1995년 63시티 개관 10주년 이벤트로 해봤다가 반응이 좋아 2003년부터 해마다 열고 있다. 4월 19일에 열린다고 해서 4·19 혁명과 관련이 있는 건 아니다. 여의도에 벚꽃 흐드러질 때를 맞췄을 따름이다.

우리나라에서 계단 오르기 대회는 63대회가 유일하지만, 외국엔 별의별 대회가 다 있다. 파리 에펠탑 오르기는 가장 오랜 전통을 자랑한다. 1905년 시작됐다. 가장 유명한 건 영화에서 킹콩이 기어올랐던 뉴욕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다. ‘계단 오르기의 올림픽’이라 불릴 만큼 권위를 인정받는다. 대만의 101타워는 가장 많은 계단을 이겨 내야 한다. 모두 2046개나 된다.

계단 오르기는 일종의 펀 마라톤이다. 마라톤처럼 긴 노선을 가면서 즐거움을 유발하는 모종의 장치를 결합한 이색 레포츠다. 펀 마라톤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가 계단 오르기 모양 이색 코스 마라톤이다. 만리장성 마라톤이나 야생동물 득실대는 사파리 통과하는 케냐의 사파리콤 등이 이에 속한다. 우리나라에선 맨발 마라톤이 대전 계족산에서, 수중 마라톤이 경남 합천에서 열린다. 다른 하나는 이색 달리기다. 이를 테면 아내 업고 달리기, 하이힐 신고 달리기(남자 부문도 있다!), 웨딩드레스 입고 달리기 등이다. 이 둘을 합친 경우도 있다. 1760개 계단을 오르는 캐나다 CN 타워 대회에선 피아노를 짊어지고 오른 사람도 있었다.

펀 마라톤은 살벌한 경쟁보다 말 그대로 참가하는 데 의의를 둔다. 완주가 당면 목표고, 신나게 완주하는 게 궁극의 목표다. 하여 펀 마라톤에선 튀는 복장이 되레 장려된다. 1등도 상을 받지만, 이색 복장 참가자도 상을 받는다. 지난해 63계단 오르기 대회에선 헬멧부터 프로텍터까지 하키 복장을 갖춘 서울대 학생(사진)이 베스트 드레서로 뽑혔다. 신입 회원이 들어오지 않아 이렇게라도 하키 동아리를 알리려 했단다. 부처 가면을 쓴 남자, 마빡이 가발을 쓰고 나온 남자도 있었다.

걷는 건 생활이다. 어디를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걷느냐에 따라 생활은 운동이 된다. 높이 284m를 오르는 63대회에서 일반인은 평균 20분대에 들어온다. 완주하면 열량 800㎉가 소모된다. 보통 걸음으로 5분만 계단을 올라도 40㎉의 열량 소비 효과가 발생한다. 생활이 운동이다.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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