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은행의 종금지원 왜 겉도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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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IMF의 협정은 과잉정의 (overdefine) 된 부분이 많다.

핵심은 몇 가지만이고 나머지는 노파심에서 나온 군더더기다.

은행은 국제결제은행 (BIS) 최소 자본비율 8%를 지킬 것, 통화증가율은 물가상승을 5% 이내로 막을 수 있게 유지할 것, 정부는 소폭이라도 재정흑자를 실현할 것, 경상국제수지 적자는 국내총생산 (GDP) 의 1%를 넘지 않을 것, 이 네 가지만이 핵심이다.

경제성장률을 3% 이내로 묶은 것이나 이자율을 20%까지 허용할 것 등의 조건은 용잡 (冗雜) 사항에 지나지 않는다.

문제는 이렇게 과잉정의까지 할만큼 철조망을 쳐두었는데도 불구하고 한국정부는 기본산술조차 셈하지 못해 엉뚱한 방도를 강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떤 논리도 산술을 뚫고 나가지는 못한다.

자본비율 8% 이상 조건을 채우려면 은행이 지금 이상으로 기업이나 비은행금융기관 (non - bank)에 당장은 자금 지원을 할 수 없다는 것은 그 예다.

이것은 확률이 아닌 산술이다.

이것을 모르고 재정경제원은 은행이 나서서 기업어음 (CP) 의 상환만기를 연장하고 업무정지된 종금사에 묶인 예금을 담보로 은행이 대출을 늘려주라고 지시했다.

만일 이 지시를 따르면 은행은 BIS 조건을 채울 수 없다.

그러니 정부의 은행에 대한 종금 지원 지시는 원천적으로 겉돌 수밖에 없다.

한은이 직접 대출하는 것은 통화량 증가율 조건에 묶여 있다.

정부 재정에서 지원하려면 흑자 조건이 있는한 불가능하다.

이런 것을 모르고 변통수를 마련하려고 애쓰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더구나 IMF와 다른 구제금융제공 국가들 눈에는 협정을 일탈하려는 엉뚱한 짓으로 비칠 수도 있다.

건전한 기업의 도산을 막기 위한 긴급자금 공급을 위해서는 현재의 국내 금융기관 아닌 별도의 원천과 경로가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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