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증권 법정관리 신청 배경과 파장…증권사 연쇄부도 우려 증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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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고려증권 부도에 이어 동서증권마저도 법정관리를 신청하게 됨에 따라 증권사의 연쇄도산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다.

동서증권은 순재산액이 4천7백억원에 달하는 등 다른 증권사와 비교해 재무상태가 그렇게 나쁜 편은 아니지만 예탁금인출사태를 빚은 현재의 신용공황의 희생양이란 점에서 증권업계를 공포의 분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업계에서는 '다음차례는 누구' 라는 식의 악성루머가 돌고 있는 가운데 자금력이 취약한 증권사엔 예탁금이 급속도로 빠져나가고 있다.

34개 증권사 사장단들은 12일 오전 증권업협회에서 긴급회동을 갖고 공멸위기에 처한 증권사 살리기에 묘안을 짜봤지만 뽀족한 대책이 없어 발만 동동 굴렀다.

증권업계의 위기는 9개 종금사가 지난 2일 업무정지를 당한뒤 은행권이 자금지원을 중단하면서 촉발됐다.

고려증권이 부도났고 추가로 5개 종금사가 영업정지를 당하면서부터는 증권사들은 거의 '인공호흡기' 로 목숨을 이어가는 처지가 됐다.

증권사들은 회사별로 하루 5백억~3천억원씩의 결제자금이 만기도래하고 있으나 급전을 조달할 길이 없어 피말리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동서증권의 경우도 지난 9일 증권금융의 특별지원으로 연명해왔으나 11일밤 추가 담보제공이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숨이 넘어가버린 것이다.

동서가 법정관리 신청을 하면서 마지막으로 기대고 있는 서울민사지법도 수용여부를 놓고 고민에 빠져 있다.

재판부의 고민거리는 고객예탁금을 어떻게 처리하느냐다.

고객예탁금은 재무제표상 채무항목에 들어가 있어 재산보전처분이 내려져 채권.채무가 동결되면 고객예탁금까지 묶어야 되는지를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증권사는 실체가 명확한 자산은 부동산.주식밖에 없어 증권업 노하우.고급인력등 무형자산을 어느 선까지 인정해야하는지도 쟁점이 되고 있다.

민사합의50부 관계자는 "앞으로 금융기관의 도산이 가속화되면 동서증권의 법정관리신청 사건이 첫 선례로 남기 때문에 일본 산요증권의 사례등 유사한 판례를 면밀히 검토한뒤 결정하겠다" 고 밝혔다.

정부와 한국은행이 지원에 나서고 있지만 여의치가 않다.

시중은행들은 국제결제은행 (BIS) 의 자기자본비율 (8%) 준수에 급급해 모두 급전 (Bridge loan) 을 거부하고 있다.

한국은행의 자금을 전달하는 것이지만 이것도 대출로 계상되기 때문에 부실대출 증가를 우려하는 것이다.

게다가 증권사들은 그동안 아쉬운대로 써버리는 통에 은행대출에 댈만한 담보가 별로 없다.

동서증권만 하더라도 담보제공능력이 4백억원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때문에 증권계일각에서는 증권감독원.증권거래소등 증권유관기관의 건물등 자산을 담보로 제공하자는 얘기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또 고객예탁금이 요즘 몰려와 사정이 괜찮은 일부 증권사들이 콜자금을 부도위기에 처한 경쟁사에 빌려주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으나 반발이 심해 실행여부가 불투명하다.

홍승일·김동호·정철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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