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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영 기자의 장수 브랜드] 한국야쿠르트 유산균 발효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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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뭐? 균을 돈 주고 사먹으라니, 무슨 미친 소리야.”

1971년 8월 출시된 야구르트(사진)를 접한 사람들은 이렇게 화를 냈다. 한국야쿠르트는 생각다 못해 사람들을 모아 버스에 태워 경기도 의왕에 있는 공장으로 데려갔다. 이곳에서 이들에게 발효유를 나눠준 뒤 유산균의 유익함을 알리는 홍보 영상을 틀어줬다. 1기로 이 회사에 입사한 김순무 부회장은 “유산균이 장 속에서 증식하며 나쁜 균을 없앤다는 내용의 영상을 본 사람들은 엄청나게 놀랐고, 일부는 토하기까지 했다”고 회고했다.

유산균의 좋은 점이 입소문이 나 야구르트가 인기를 끌기까지는 그로부터 2년이 넘게 걸렸다. 이 회사 백영진 고문은 “그후 수요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일본에서 들여온 기계를 스스로 고치고 설비를 추가해 3교대로 24시간을 돌렸다”고 말했다. 원료인 탈지분유가 부족해 남대문시장에서 1㎏짜리 포대 분유를 부랴부랴 구해 쓴 일도 있었다.

국내 최초의 유산균 음료 야구르트의 탄생은 종균, 그리고 온도와의 싸움이었다. 건국대 축산대학장이었던 한국야쿠르트 초대 사장 고 윤쾌병(1923~2000) 박사는 일본 니혼대 농수의학부를 졸업해 일본과 인연이 많았다. 친분이 있던 시로다 미노루(1899~1982) 박사가 개발한 유산균을 이용해 만든 야구르트가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윤 박사는 “유산균 발효유를 한국에도 보급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일본야쿠르트 회장을 맡고 있던 시로다 박사를 설득했다. 자본금은 친척인 윤덕병 창업주가 댔다.

일본에서 유산균 종균을 공급받는 대가로 지분 38.3%를 넘기는 합작 계약을 70년 맺고 직원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노하우를 배워왔다. 유산균 종균을 들여와 10~12배로 배양해 물을 섞는 방식이었다. 보통 발효유는 최장 12시간 발효하면 되지만 야구르트는 72시간 넘게 중간에 온도를 바꿔주면서 발효해야 했다. 종균 수입이 인가되지 않았던 시절이어서 균을 앰풀에 담아 호주머니에 숨겨 들여오곤 했다. 이렇게 가져온 앰풀을 탈지유에 접종해 동결 건조시켜 사용했다. 연구원 15~16명이 매일 밤 균주와 씨름했다. 종균을 7~8개월에서 1년 정도 쓰면 활력이 떨어져 다시 들여와야 했다. 이후 81년 자체 기술로 종균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야구르트는 섭씨 0~10도로 냉장 보관해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것이 관건. 냉장고가 드물던 시절이어서 ‘손에서 손으로’ 전달해야겠다는 판단으로 그 유명한 ‘야쿠르트 아줌마’가 생겼다.

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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