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칼럼]금융시장 마비 해결 묘수는 찾아보면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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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한 중견기업의 자금을 맡고 있는 金모부장은 요즘 고민이다.

1개월전 나름대로 위기를 감지, 단기자금을 상환하는 등 대비를 했는데 회사채 보증을 선 종금사가 최근 영업정지를 당했다.

개인에 대한 소액 대출까지 완전마비된 요즘 자금시장 어디에서 보증을 얻을 것인가.

잇따라 발표된 정부 대책에도 외환.자금.주식시장은 꿈쩍않는다.

10일에 발표된 금융시장 추가 안정대책에도 환율은 제한폭까지 올랐다.

기업어음 (CP) 할인업무에 경험이 없는 은행이 적극적으로 나설거라고 믿는 사람을 많지 않다.

IMF합의문에 나타난 "생존불능한 금융기관을 퇴출하기 위한 실행계획과 취약하지만 자력갱생이 가능한 금융기관을 처리하기 위한 정책" 이 나오기 전에 당장 시장의 마비상태를 풀 처방이 필요하다.

정부에 대한 신뢰가 추락한 마당에 은행을 움직이게 할 묘수는 없음이 입증됐기 때문이다.

다음 두가지 방법은 어떨까. 하나는 성업공사로 하여금 기업 (금융기관 포함) 의 부동산을 제한없이 사들이는 것이다.

이 경우 장부가격은 의미가 없다.

성업공사는 시장에서 정상적인 흥정을 할 경우 지불해야 하는 가격만 주면 된다.

혹 은행이 대출금보다 적은 금액을 회수해 손실을 입더라도 현금을 확보할 수 있고 부실채권이 없어져 초미의 관심사가 되어 있는 국제결제은행 (BIS) 의 자기자본비율을 올리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기업은 이 거래로 당장 현금을 만지기는 힘들지 모르지만 상환한 부채에 대한 이자를 지급하지 않아도 되고 부채비율을 낮출 수 있다.

마비상태를 푸는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정부로서도 부동산을 담보로 잡아 손해볼 장사는 아니다.

자구노력으로 발버둥치는 기업이 부동산을 처분하려 해도 사줄 사람이 없는 실정이다.

대주주가 소유한 부동산을 처분, 증자를 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문제의 본질을 직시해야 한다.

양과 염소를 가리는 작업보다 '애매하게' 쓰러지는 기업은 살리는 것이 급하다.

부동산을 적정가격에 사주는 방법은 직접적인 반면 구제금융은 아니기 때문에 시장원리와도 부합한다.

문제는 자금이다.

주먹구구로도 30조원이상 필요할 것이다.

시장의 신뢰를 얻기 위해선 주머니가 두둑해야 한다.

결국 재정에서 부담할 수 밖에 없다.

일부는 국내에서 3당후보가 합의한 무기명장기채를 이용하고 나머지는 해외에서 정부가 직접 국채를 발행한다.

흑자 예산을 꾸린다면 5~10년 정도면 갚을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하나의 방법은 국내은행의 경영권을 전면 개방하는 것이다.

서울은행과 제일은행을 국유화한 것은 시대 흐름을 역행하는 것이다.

그것도 인원 감축등 자구계획이 없고 민영화를 언제 어떻게 할 예정인지 분명치 않다.

국내 지점영업에 관심있는 외국은행들은 많다.

다만 정부는 그동안 실추된 신용을 만회하기 위해 금융기관의 건전성 감독을 제외한 일체의 영업활동, 예를 들어 상품 및 서비스 개발에 간섭하지 않을 것임을 천명할 필요가 있다.

한은의 독립.금융감독기구의 통합도 이 범주를 벗어날 수 없다.

동시에 국내은행들도 합병을 통해 살길을 찾는 획기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권성철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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