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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업정지로 묶인 종금 14사 예금 '선지급 후정산' 배경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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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부가 검토하고 있는 종금사 예금에 대한 '선 (先) 지급 후 (後) 정산' 방식은 금융시스템 붕괴를 막기 위한 마지막 카드다.

영업정지 조치로 인해 14개 종금사에 묶여버린 법인.개인의 예금을 일단 일부라도 먼저 내주고 후에 정산하는 방식은 평상시에는 도저히 생각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최후의 '비상수단' 을 동원하지 않고서는 꽁꽁 얼어붙은 자금시장을 풀 수 없고, 금융시스템 붕괴라는 회복할 수 없는 사태로 치달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이런 방식을 재촉하고 있다.

정부는 지금까지 어떤 형태의 예금이든 원리금을 보장한다고 밝혀왔음에도 예금인출 사태가 여전하다는 점에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정부는 그동안 원리금만 보장하면 만사가 해결될 것으로 믿어왔다.

그러나 9개 부실종금사의 갑작스런 영업정지 조치 이후 예금을 '제때 찾을 수 없다' 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정부의 원리금 보장' 은 그 약효를 상실했다.

이달 들어 잇따라 발표된 정부의 종금사 영업정지 조치는 되레 상황을 꼬이게 만들었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자금이 실제로 어떻게 흐르는지를 면밀히 파악하지 못한 채 덜컥 '초강력 조치' 를 발표한 결과였다.

상대적으로 건실하다고 정부가 판단, 영업정지 조치를 피해간 나머지 종금사들도 예금인출 사태로 인해 자금난을 겪게 됐다.

은행들은 일부 종금사에 대해 콜자금 지원을 꺼리기 시작했다.

여기에다 예금인출까지 겹치자 종금사 부족자금 규모는 눈덩이처럼 커져만 갔다.

정부가 자금지원을 종용했지만 일단 예금이 빠져나가고 있는 종금사에 자금을 지원할 은행이 있을 리 만무했다.

한국은행이 아무리 돈을 풀어도 돈은 은행권에서만 맴돌 뿐 종금사로 흘러들어가지 않았다.

임창열 (林昌烈)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장관이 은행장들을 불러 콜자금 지원을 종용했지만 전혀 효과가 없었다.

정부는 부족자금 규모가 큰 5개 종금사에 대해 영업정지 조치를 내리면 자금사정이 개선될 기미를 보일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상황은 더 꼬여만 갔다.

이날 동양.제일 등 나머지 종금사들은 기존의 5개 종금사에 돈을 예치해뒀던 기업들로부터 일제히 예금인출 폭격을 받고 항복을 선언했다.

그나마 돈을 막아가던 이들 종금사도 돈을 구하기 위해 한은으로 SOS를 요청했다.

정부가 '선지급 후정산' 방식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

수십조원의 필요자금을 금융시스템이 붕괴되기 전에 신속히 마련해야 한다.

국채를 발행하자면 국회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 상황은 오는 22일 임시국회에서 동의안을 처리한 후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할 때까지 기다릴 만큼 한가하지 않다.

그래서 먼저 한은이 자금을 시중은행에 지원하고 시중은행은 이 자금을 신용관리기금에 예탁한 뒤 신용관리기금을 통해 종금사 예금을 선지급하는 방식이 설득력있게 제기되고 있다.

풀린 돈은 일단 사태가 수습된 뒤 통화안정채권 등을 통해 다시 흡수하면 된다는 설명이다.

그 후에는 국채발행을 통한 자금조달로 되갚을 수 있다.

이 방식은 사실 선후가 뒤바뀌어도 한참 뒤바뀐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것 저것 가릴 만한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 문제의 출발점이자 실마리다.

박장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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