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금붙이 모으기' 운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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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면서부터 금은 모든 가치의 척도였으나 막상 금이 화폐의 기능을 대신하는 금본위 (金本位) 제도가 실시된 것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의 수십년간이었다.

한데 그 시기, 곧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년 파국의 수렁 속에 빠질 뻔했던 미국 경제가 금 때문에 되살아날 수 있었다는 사실은 매우 상징적이다.

당시의달러화는 내리막길을 치닫고 있었다.

개전 (開戰) 전까지만 해도 세계 통화의 중심이었던 영화 (英貨) 파운드당 4달러선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개전과 함께 7달러로 치솟았다.

미국은 금본위제 하의 영국에 다량의 금을 내보내기 시작했다.

그 금은 평가절하되기 전의 파운드화로 환산돼 미국으로 되돌아왔고, 파운드화는 7달러의 환율로 바뀌어 다시 금을 사들이는데 쓰였다.

그 수익이 엄청난데다 해외보유 증권의 환금을 방지하기 위해 뉴욕 증권거래소마저 폐쇄시키니 미국의 경제는 당장 안정을 되찾게 된 것이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이 일이 있고나서 영국을 비롯한 여러나라의 금본위제도는 폐지되기 시작했고, 세계 어떤 나라도 지폐나 은행예금을 금으로 바꾸지 않게 됐다.

더구나 다이아몬드를 비롯, 더 값지고 더 귀한 보석들이 등장하면서 금의 상대적 가치는 갈수록 떨어졌으니 금으로 '재미' 를 본 나라는 오직 미국뿐인 셈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6.25동란 때만 해도 피난살이에서 금은 당장 현금이 되는 제1순위의 소중한 재산이었지만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금값 상승률이 물가상승률을 따라잡지 못할 뿐만 아니라 금을 지니고 있어 봤댔자 은행에 같은 액수를 예금하니만도 훨씬 못하기 때문이다.

아닌게아니라우리나라에서 금의 용도별 수요를 보면 그 '따분한 신세' 가 짐작이 될 만하다.

반지.목걸이.행운의 열쇠 따위를 만드는데 쓰이는 것이 약 85%로 압도적이며, 그밖에 전자산업용이 약 8%,치과 (齒科) 용이 약 6% 등이다.

그래도 아직 상당량의 금을 수입하고 있다니 이해가 가질 않는다.

몇몇 민간단체에 뒤이어 검찰까지도 '금붙이 모으기' 운동에 나섰다고 한다.

단 한푼의 달러도 아쉽게 된 판국에 금의 수입을 억제해 외화 절약에 기여하자는 의도다.

금세기 초의 미국처럼 금의 수출로 경제회생의 꼬투리를 잡지 못하는 게 안타까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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