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샛별] 국립발레단 발레리노 이동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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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발레단의 ‘해설이 있는 발레-돈키호테’를 준비 중인 이동훈. 이번 공연에선 주인공 바질 역으로 관객에게 인사한다.

 ‘신데렐라’는 현실 속에선 ‘왕자’ 발레리노(남성 무용수)였다. 국립발레단의 봄 정기공연 ‘신데렐라’가 막을 내린 뒤 스포트라이트의 주인공은 신데렐라 역 김지영도, 요정 대모 역 김주원도 아니었다. 여성의 발에 집착하는 풋풋한 왕자를 천연덕스레 연기한 저 신예는 누구인가. 탄력 넘치는 도약, 유연한 회전, 크고 시원시원한 동작에 훤칠한 키(181㎝)와 ‘꽃미남’ 외모. “열정적인 기대주”(국립발레단 최태지 예술감독의 평) 이동훈(23)이 대중의 눈에 각인된 순간이다.

◆성실한 노력으로 약점 극복=이동훈에 대한 첫 평가는 “성실하다”(김지영)는 것. ‘신데렐라’ 주역도 행운이 아니었다. 원래 그는 선배 이충훈의 대기 무용수였다. 멀찌감치 리허설을 지켜보며 혼자 연습하던 그를 공연 1주일 전 안무가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가 불렀다. “예술의 전당 토요일(3월 21일) 2회분을 맡으라”는 것. 단 두 번의 무대에서 그는 세계적인 안무가의 안목이 그르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이어진 서울 열린극장 창동 공연에선 김지영·김주원 등 스타를 제치고 소녀 팬들의 환호를 받았다.

지난해 9월 세종대 무용과 4학년 재학 중에 국립발레단에 특채 입단한 뒤 한달 만에 ‘지젤’의 2인무로 데뷔할 때부터 그는 도드라졌다. 전막 공연은 지난해 말 ‘호두까기 인형’과 올 3월 ‘신데렐라’ 두 번뿐이지만 우연히도 둘 다 ‘왕자’ 역이다.

대학 전까지 발레를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는 걸 돌이키면 놀라운 성장 속도다. 개인교습 한 번 없이 경기고 3년간 사설 학원을 다닌 게 전부. 그럼에도 예고·유학파 출신을 물리치고 고교 시절 주요 콩쿠르 10여 개를 휩쓸었다.

늦게 시작한 데다 타고난 골반이 턴 아웃(Turn-out·두 다리를 일자로 벌리는 발레의 기본 동작)을 소화하기 무리다. 평발 탓에 ‘발레의 미’를 상징하는 발등의 아치도 불가능하다. 울룩불룩한 상체 근육도 발레리노로선 감점 요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한계를 넘어서는 만큼 뿌듯하고 자유롭다”며 수줍게 웃는다.

◆비보이 경험 ‘모던 발레’로 활짝=발레를 하기 전 이동훈은 비보이였다. 힙합 음악에 맞춘 자유로운 몸짓에 빠져 중학교 3년 동안 ‘초인(超人)’이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했다. 그의 장래를 염려하던 부모는 “이왕 춤을 출 거면 발레를 시켜보라”는 체육 교사의 권유를 받아들였다.

비보이 경험은 그에게 무대에서의 자유로움을 선사했다. 2006년 러시아 ‘페름 콩쿠르’ 땐 비보이 테크닉을 접목한 안무로 기립박수를 받기도 했다.

틀에 박히지 않은 이동훈의 표정과 동작은 특히 드라마와 창의적 안무를 중시하는 모던 발레와 통한다. ‘신데렐라’에 이어 가을에 공연할 ‘차이코프스키’ 등 컨템포러리 발레를 적극 접목하고 있는 국립발레단의 최근 경향과도 맞는 셈이다.

발레리노로서 다음 도전은 5월 ‘모스크바 국제발레콩쿠르’. 4년마다 열리는 이 ‘발레 올림픽’에 그는 ‘지젤’의 파트너였던 김리회와 함께 듀엣 부문에 도전한다. 입상하면 남자 무용수로선 1997년 동상을 받은 김용걸 이후 두 번째다.

강혜란 기자, 사진 제공=국립발레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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