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과 공동체] ‘베트남댁’에 한국 가르치는 ‘엘살바도르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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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에 뭐 했어요.”(강사)

“칭~구 만나았어요.”(벤티녹렌)

“서언생님은 뭐어 했어요?”(팜티빌리에우)

“성당 갔어요.”(강사)

한국에 시집온 엘살바도르 출신 주부 클라우디아(中)가 다른 다문화 가정 주부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있다. [김경빈 기자]


30여 분에 걸친 한국어 교육이 끝나자 강사가 이번엔 ‘일일보모’가 됐다. 팜티빌리에우의 딸과 20여 분간 즐겁게 놀았다. 클라우디아는 2년 전부터 수원시 결혼이민자가족지원센터(센터장 최병조)에서 ‘다문화가족방문지도사’로 봉사하고 있다. 전체 지도사 25명 중 외국인은 그를 포함해 3명뿐이다.

그는 매주 4일간 하루 네 시간씩 다문화 가정 집을 돌며 한국어, 한국 요리, 육아법 등 외국인 주부들이 한국에서 사는 데 필요한 내용들을 지도한다. 수원시에서 받는 수고비는 시간당 4000원 정도다. 팜티빌리에우는 “한국말은 조금 서투르지만 같은 외국인이니까 한국인보다 대하기가 더 편하다”고 말했다.

클라우디아와 남편 전영만(53·회사원·수원시 정자1동)씨는 초등학교 4학년생 딸을 두고 있다. 타고난 성격이 활달한 데다 매사에 적극적인 그는 한국인 주부 못지않게 다방면에서 솜씨를 발휘하고 있다.

독학을 거쳐 치른 ‘한국어능력시험(TOPIK·한국교육과정평가원 주관)’ 실력은 중급(3급)이다. 시어머니에게 배운 요리 솜씨는 김치를 직접 담그고 된장찌개를 끓일 정도로 수준급이다. 한국인 친구들과 노래방에서 즐겨 부르는 노래는 손담비의 ‘미쳤어’다.

“한국으로 시집온 뒤 8년 만에 처음으로 지난해 말에 친정에 가 부모님과 두 여동생을 만났어요.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거쳐 엘살바도르까지 가는 데 비행기로 꼬박 24시간이나 걸려요.” 그의 부모님은 경제적 여력은 있지만 아직 한 번도 딸 집에 오지 않았다. 딸과의 나이 차가 스물한 살이나 나는 ‘동양인 사위’를 못마땅해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는 “착한 남편이 잘해주는 데다 다문화 가족들에 봉사하며 사는 한국 생활이 재미있어 남편과 결혼한 걸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클라우디아가 남편 전씨를 처음 만난 것은 산살바도르(엘살바도르의 수도)에서 고등학교 1학년에 다니던 1997년이었다. 당시 전씨는 한국 모 봉제회사의 엘살바도르 현지 공장 책임자였다. 클라우디아는 고3 때 현지에서 결혼한 뒤 이듬해 대학(건축학과)에도 진학했다.

그러나 그해 남편이 한국 본사 발령이 나자 대학을 중퇴한 뒤 남편을 따라 한국에 왔다. 하지만 모든 게 낯선 이국땅에서의 시집살이는 부모님의 박대보다도 더 힘들었다. 시어머니는 한동안 ‘코 큰 며느리’를 탐탁지 않게 여겼다고 한다. 게다가 한국에 온 지 1년도 안 돼 남편은 혼자 남미로 해외근무를 나갔다. 설상가상으로 엘살바도르에서 낳은 딸은 환경 변화 때문인지 세 살 때 한국에 온 뒤 2년 동안 폐렴을 앓았다. “한국말이 안 통하자 스페인어 사전을 찾으면서 진료하던 의사 선생님 모습이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요.”

남편이 두고 간 스페인어 교과서들을 닥치는 대로 읽으며 한국말을 공부했다. 한국 음식 만드는 법도 열심히 배웠다. 마침내 한국에 온 지 3년이 지나자 시어머니는 마음을 열기 시작해 지금은 완전히 며느리 편이 됐다.

“한국어를 더 열심히 배워 결혼 이민자들을 많이 돕고 싶어요. 방송통신대학에 입학해 결혼 때문에 중단한 공부도 더 하고 싶고요.” 그의 소박한 꿈이다.

최준호 기자 강민경·이수연 중앙일보 대학생NGO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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