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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로 짚은 97]문학…이문열 '선택' 논란속 불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2면

“이제 이문열이라는 글쟁이는 '순수문학' 이란 상호를 내건 단란주점에 앉은 호스트이다.

이 '선택' 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이문열의 철저한 '상업적 선택' 이었다.

" 97년은 우리시대 최고의 인기.문제 작가 이문열씨가 '호되게 당한' 한 해였다.

지난 4월 장편 '선택' (민음사刊) 을 펴낸 이후 여성 논객들이 신문.잡지등을 통해 이 작품이 여성.여성운동을 폄하.비난했다며 끊임 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기 때문. 논란이 일면 일수록 이 작품은 불티나게 나가 현재 25만부가 팔리고 있으며 주로 여성독자들이 읽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4월 박정희의 일대기를 영웅적으로 그려나가겠다며 '인간의 길' 첫 두권을 펴낸 이인화씨도 논란을 몰고왔다.

당한 사람들의 상처가 아물지도 않은 상태에서 하필 독재자를 영웅으로 부활시키느냐며 작가의 몰역사.반역사 의식을 비난하고 나선 것. 이 두 작품의 논란은 올 한 해 그저 밋밋하게만 흘러가던 문단에 긴장을 불러일으키며 아직도 소설작품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 논란은 문학적 논쟁으로까지는 들어오지 못했다.

여성운동이나 역사적 차원에서의 거의 일방적 비난과 방어로만 일관됐기 때문이다.

"습작 수준도 안되는 작품을 수상이라는 화제성 계기를 통해 근사한 상품으로 만들겠다는 출판사의 이벤트 마인드가 앞장을 서고, 문단의 중견들이 관행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뒤를 받치는 식의 '비장려적' 행태가 일반화 됐다. " 중견문인 6명의 공동서평으로 '현대문학' 7월호에 실린 이 한마디는 90년대 문학의 한 전환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 공동서평은 신인등용문으로서 남다른 권위와 자부심을 지닌 오늘의 작가상 제21회 수상작인 김호경씨의 장편 '낯선 천국' 을 습작 수준도 안된다고 비난하며 문단의 상업성에 대해 공격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 상의 심사와 운영에 참여했던 소설가 하일지.문학평론가 장은수씨는 "새로운 소설을 읽어낼수 있는 독해력이 문제다" "수상작 선정에는 문학 외적인 어떤 것도 작용되지 않았다" 고 반론을 폈다.

이 논쟁을 기점으로 해 90년대 이후 등단한 신세대문학에 대한 논란이 본격적으로 일게 됐다.

90년대 들어 문예지.출판사들은 다른 데에 놓칠세라 앞다퉈 신세대 작가를 발굴, 작품을 단행본으로 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평자들을 '동원' 해 '새롭고 좋고 가치 있다' 고 평하게 했다.

문장도 틀리고 도대체 뭐가 좋고 가치 있는 줄도 모르겠지만 일단 그렇게 칭찬하고 나오면 다른 평자들은 나몰라라 해버리는게 90년대 문단의 관행처럼 굳어졌다.

평론의 양심으로 나서면 '왠 돈키호테 같은 ×이냐' 는 욕이나 들으며 문단서 그대로 매장될 정도로 굳어진 관행. 그 관행에 공동서평 형식으로 대항한 이후 중견.신예평론가들이 이제 줄줄이 신세대 문학의 거품 걷기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올해에만 '한국문학평론' '포에티카' '당대비평' 등 계간 평론전문지 3개가 창간됐다.

상업주의에 함몰된 평론의 제 기능을 회복하자는 움직임으로 볼 수 있다.

시.소설에서 시대를 이끌만한 문제작이나 독서계를 이끈 베스트셀러도 눈에 띄지않을 정도로 본격문학의 가난한 해가 97년도였다.

전년도 보다 문학 작품은 더 많이 나왔는데도 말이다.

또 각 대학마다 문창과 개설이 붐을 이루고 문예지나 출판사에 응모작품 수도 늘어 문학 예비군들은 늘고 있는데 기성 문단은 제각각 고만고만한 작품들밖에 내놓지 못했다.

문학이 상업 제일주의로 나아간 폐해이다.

돈에 발목 잡혀 제구실을 못하고 있는 기성문단은 문인과 문학도, 나아가 일반독서대중을 위해 하루 빨리 제 기능을 회복해야 할 것이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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