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장벽에 갇힌 소니 ‘근시안’으로 전락

중앙일보

입력

관련사진

photo

이코노미스트 1970년대 소니는 삼성전자가 넘보지 못할 만큼 대단한 회사였다. 경영서적 『소니의 국제화 전략』이 삼성전자 간부급의 필독서였을 정도다.

계급·계층 없는 닌텐도, 소니 단숨에 따돌려 … 소통 단절된 소니 “아! 옛날이여” #장벽을 허물어라! - 소니가 닌텐도에 뒤진 이유는?

소니는 휴대용 카세트 레코더인 워커맨(Walkerman)을 개발해 세계 시장을 석권했다. 비디오 테이프 레코더에서 베타막스 방식을 개발해 VHS 방식과 일전을 치렀다.

베타막스 방식은 기술적으로 우수하고 화질도 뛰어났음에도 대중성 면에서 뒤져 사업을 접어야 했다. 그러나 고화질 TV를 개발하고 고음질 오디오 기기를 계속 내놓음으로써 가장 기술력이 뛰어난 회사로 인정받았다.

휴대용 게임기 사업에도 뒤늦게 뛰어들었지만 닌텐도보다 우수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플레이 스테이션(Play Station)을 개발했다. 소니가 만든 32비트 게임기는 1995년 시카고 가전제품박람회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32비트 마이크로 프로세서에 680메가바이트까지 저장할 수 있어 기존 게임기보다 훨씬 더 뛰어난 품질을 보였다. 닌텐도는 2D게임이었으나 소니는 입체감이 풍부한 3D게임의 막을 열었던 것이다. 3D 그래픽으로 공룡 티라노사우루스가 움직이는 모습을 본 사람들은 경악했다. 플레이 스테이션은 전 세계에서 1억 대가 넘게 팔려나갔고 단숨에 게임기 시장에서 1위가 됐다.

변화에 둔감했던 소니

하지만 소니의 영광은 여기까지였다. 1990년 중반 이후부터는 슬럼프에 빠지게 된다. 아날로그 시대의 성공에 도취돼 가전제품의 디지털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워커맨의 성공은 기술자들에게 아날로그 기술에 강한 애착을 느끼게 했고 경영자들에게는 오디오 기기에서는 소니가 세계 최고라는 자만심을 갖게 했다.

성공 경험을 가진 관리자들은 효율을 올리기 위해 기능을 세분화하고 조직을 전문화했다. 전문화된 기술자들은 자신이 맡은 부분에서 세계 최고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더욱 깊은 기술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소니의 기술자들은 기술적으로는 뛰어날지 모르지만 세상의 변화에는 둔감해지는 테크노 근시안(近視眼)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들은 1990년대부터 불어 닥친 디지털화를 간과한 것이다. 한국 기업들이 디지털 오디오 기기인 MP3 플레이어를 들고 나왔을 때도 소니의 엔지니어들은 음질이 조잡한 장난감처럼 생각했다. 그래도 소니의 일부 엔지니어가 MP3 플레이어를 개발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지만 매니저들은 이를 무시했다.

기능의 벽과 계층의 벽에 갇혀 커뮤니케이션이 단절된 것이다. 비슷한 현상이 게임기에서도 나타났다. 플레이 스테이션이 성공을 거두자 소니는 자꾸만 성능을 향상시켜 플레이 스테이션2를 내놓았다. 성능이 좋아진 만큼 소프트웨어도 대작(大作)이 돌아갈 수 있었다. 강력한 하드웨어를 개발하고 거기에 맞게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개발이 따로따로 이뤄진 것이다. 고성능 하드웨어에 대작 소프트웨어가 돌아가는 만큼 가격은 자꾸 상승했다. 게임이 어려워지고 가격이 상승하니 시장의 규모는 점차 작아졌지만 소니는 시장과의 벽에 휩싸여 이를 느끼지 못했다. 소니가 보지 못한 게임기의 새로운 시장을 발견한 회사는 닌텐도(任天堂)다.

관련사진

photo

소니가 게임기 사업에 진출하자 2위로 밀리고 다시 마이크로소프트(MS)마저 게임기 사업을 시작하자 닌텐도는 3위로 처졌다. 게임기 시장에서 부동의 1위를 달리다가 갑자기 3위로 추락하자 닌텐도는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된다. 게임기 시장을 다시 보니 고성능 게임기를 좋아하는 게임 매니어 시장은 그리 크지 않고 아직까지 게임을 하지 않는 비(非)게이머 시장이 더 크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닌텐도는 시장과의 벽이 낮은 회사로서 새로운 시장의 발견과 고객들의 니즈를 파악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42세의 젊은 나이에 닌텐도의 CEO가 된 이와타(岩田)는 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 위한 새로운 컨셉트의 게임기 개발에 몰입한다. 닌텐도는 120년 된 회사로서 보수적이고 관료주의적인 회사인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개발자 중심으로 된 조직은 작고 단순하다.

아메바 조직 닌텐도

내부에 기능이 세분화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프로젝트 단위별로 기획자와 개발자가 같이 일을 한다. 개발자도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한 팀에서 일한다. 프로젝트 리더와 팀원들이 같이 아이디어를 내고 바로 개발에 착수해 시제품을 만들고 부수고 다시 만드는 일을 빠르게 한다.

하나의 제품을 만들 때 하드웨어 따로 소프트웨어 따로 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하는 하프트(Ha-ft: Hard + Soft)적 사고로 일한다. 부문 간에 벽이 없다는 것이다. 프로젝트 리더와 개발자들 간에 계급이나 계층이 거의 없어 40~50대 개발자가 즐비하다. 소니의 게임기 참여로 닌텐도는 위기를 맞지만 완전히 발상을 바꿔 ‘닌텐도DS’라는 새로운 게임기를 개발한다.

이와타 사장이 취임한 지 2년 만의 일로서 이른 시간 내에 전혀 새로운 컨셉트의 게임기를 개발했다. 이는 닌텐도가 시장과의 벽이 낮고 부문 간, 기능 간의 벽이 없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닌텐도DS는 시장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보여 1억 대 이상 판매됐다. 닌텐도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2년 후에 새로운 컨셉트의 스포트 게임기인 위(Wii)를 세상에 내놓게 된다.

닌텐도DS와 위의 성공으로 소니를 게임기 1위에서 밀어내고 다시 1위로 등극하게 된다. 소니가 닌텐도에 게임기 1위 자리를 다시 내주게 된 것은 기술력이나 인력이 뒤져서가 아니라 시장과의 벽, 부문과 기능의 벽, 상하 간의 벽이 높아서일 것이다.

김영한 창조경영아카데미 대표·ceo@marketingmba.co.kr

매거진 기사 더 많이 보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