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개 사 의약품 1122가지 판매 금지 … ‘석면 약’ 대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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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대체 약 없어 처방 못하는 사태 올 수도”
환자 “먹고있는 약이 금지 대상이 아닌지 불안”

인사돌·노루모산 등 석면에 오염된 탈크(활석)로 만든 120개 제약사의 의약품 1122개가 판매 중지되면서 곳곳에서 혼란이 발생하고 있다. 환자들은 복용 중인 약이 해당되는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고 병원들은 대체할 약을 찾지 못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이 현실을 감안하지 않고 무더기로, 유예 기간 없이 판매 중지했기 때문이다.

◆혼란=건국대병원은 2000여 가지의 처방약 중 33개가 금지 대상에 포함됐다. 금지 약인 케이콘틴(한국파마) 등 2~3개의 대체약을 확인했더니 이미 생산 중단돼 구할 수가 없다. 건대병원 관계자는 “일단 처방을 중지하도록 막아놨지만 약이 없어 처방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국립암센터 한 의사는 “대형 병원이나 주변 약국은 성분이 같은 약 중 1~2개만 취급하기 때문에 대체 약을 새로 구입하고 시스템을 바꾸는 데 시간이 걸린다”며 “병원 행정 시스템이나 환자 편의를 이해하지 못한 섣부른 결정”이라고 말했다.

석면 없는 탈크로 만든 약이 나오려면 10~15일 걸린다. 그동안 대체약을 구하지 못하면 금지 약을 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경우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병원이 약값을 떠안아야 한다.

환자들도 헷갈린다. 당뇨병 약을 먹는 한 환자는 “내가 먹는 약 이름을 잘 모르는데 그 약이 금지 대상이 아닌지 불안하다”고 말했다. 만약 금지대상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지 처리 지침이 없다. 약국에서 교환할 수 있는지, 그럴 경우 돈은 어떻게 되는지 등이 정해지지 않았다.

대한의사협회 김주경 대변인은 “1000개가 넘는 금지약과 대체약을 일일이 확인하기 어렵고 동일성분이라도 환자 특성에 따라 처방이 다르므로 무조건 대체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제약업계 반발도 거세다. 금지 명단에 포함된 약품이 50개가 넘는 회사가 있어 많게는 수십억원의 손실을 볼 수 있다. 한국제약협회 문경태 부회장은 “해롭지 않다면서 회수하라는 것은 모순”이라며 “식약청이 공권력을 과하게 사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어떤 약이 금지됐나=▶아진탈정(일양약품)▶액티스정(드림파마)▶토비코민-큐정(안국약품)▶아스콘틴서방정(한국파마) 등이 포함됐다. 명심환(한국웨일즈제약), 안심환(한국인스팜) 등 일부 한방약도 금지 대상이 됐다. 동아제약·한미약품·유한메디카·녹십자·중외제약 등 유명 제약사가 대거 포함됐고 소화제·잇몸약 등의 일반의약품에서부터 항생제·혈압약·협심증약 등 전문치료제까지 망라됐다. 다만 석면 오염 우려가 있지만 대체할 약이 없는 속코정·바미픽스정 등 11개 약품은 한 달간 유예기간을 뒀다.

윤여표 식약청장은 “위해 가능성이 거의 없는 것으로 파악됐으나 위해 물질은 미량이라도 먹어서는 안 된다는 판단에 따라 판매금지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국가 석면정책협의회 위원장인 한양대 김윤신(산업의학) 교수는 “약 속에 석면이 있다 해도 일상생활에서 노출되는 석면보다 위험하다고 볼 수 없다”며 “현재 먹고 있는 약이라면 그냥 먹어도 무방하다”고 말했다.

김은하 기자

석면 문답풀이

여자아이에 파우더 쓰면 난소암 우려
약으로 먹은 석면은 유해성 거의 없어

전문가들은 “석면에 대한 공포를 가질 필요가 없다”고 하지만 소비자들의 불안은 가시지 않는다. 세계보건기구(WHO),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자료를 토대로 위험성을 문답으로 정리한다.

-석면이 어떤 병을 유발하나.

“호흡기로 들어온 석면의 대부분은 몇 시간 안에 쓸려 나가거나 침에 섞여 기침으로 배출된다. 일부 석면은 폐세포에 들러붙어 축적되면서 호흡과 혈액순환을 방해한다. 또 폐암·중피종·석면증 등의 질병을 일으킨다. 하지만 장시간, 고농도의 석면에 노출돼야 발병 확률이 높다.”


-석면이 든 탈크로 만든 약과 화장품이 얼마나 해롭나.

“화장품을 몇 번 썼다고 병에 걸리는 것은 아니다. 석면을 입으로 먹으면 대부분 며칠 안에 배설물과 섞여 몸 밖으로 나간다. 약으로 먹은 석면은 유해성이 거의 없다. 이번에 판매 금지된 약을 다른 약으로 바꿀 필요는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베이비파우더를 아이에게 썼는데.

“석면이 아이에게 더 해롭지는 않다. 다만 생식기 주변에 파우더를 쓴 성인 여성에게서 난소암이 증가한 연구 결과가 있으므로 여아는 파우더 사용을 줄이는 게 좋다. 석면 질병은 최초 노출 후 발병까지 15~30년이 걸리기 때문에 아이 때 석면 관련 질환이 발생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아이들은 석면 함유 건축재로 만든 빌딩 근처에서 놀거나 야외에서 흙을 만지면서 자연적으로 석면에 노출되기도 한다. 모유나 탯줄을 통해 아이에게 석면이 전달되지는 않는다.”

-석면에 노출됐는지 검사할 수 있나.

“X레이나 컴퓨터단층촬영(CT)을 하면 석면으로 인한 폐의 이상을 검사할 수는 있다. 하지만 석면 자체를 발견하기는 힘들다. 소량으로 잠시 노출된 경우 검사할 필요가 없다. 점액이나 배설물로 검사할 수 있지만 거의 모든 사람에게서 일정량의 석면이 발견되므로 석면이 나왔다고 해서 건강에 해를 끼친다고 단정할 수 없다.” 

김은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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