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임시정부 통합정신 되새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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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종달새는 새장에 갇혀 있어도 파란 하늘과 푸른 숲, 여름 보리를 그리워하고 언제나 자유로운 넓은 들판을 꿈꾼다. 우리 선열들도 한민족이 일제 식민지하에서 오랜 세월을 자유 없이 갇혀 있을 때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세워 조국의 자주독립과 광복을 꿈꾸었다. 오는 13일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수립된 지 90돌이 되는 날이다.

우리 민족이 일제의 침략으로 나라를 빼앗기고 신음하고 있을 당시 수많은 선열은 국권 회복을 위해 국내외의 광범위한 지역에서 다각적인 방략을 세워 항일 독립운동을 펼쳤다. 그러던 중 3·1운동의 영향을 받아 독립운동을 보다 조직적이고도 효율적으로 전개하기 위해 임시정부를 세웠다. 그 후 임시정부는 우리 민족의 정신적 지주이자 독립운동의 구심체 역할을 했다. 이봉창·윤봉길 의사의 연이은 의열 투쟁 역시 임시정부가 주도한 특별작전으로 당시 기세등등하던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고, 침체된 독립운동을 활성화시키는 전기를 마련했다.

그러나 임시정부는 수립에서부터 광복이 될 때까지 일제의 갖은 만행으로 고난과 시련을 겪어야 했다. 우선 임시정부 청사가 일제의 탄압으로 자주 이리저리 옮겨 다녀야 했다. 상하이를 비롯해 항저우(杭州), 전장(鎭江), 창사(長沙), 광저우(廣州), 류저우(柳州), 치장, 충칭(重慶) 등 중국의 여러 곳을 전전했다. 임시정부는 청사의 열악한 환경과 숱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그 법통을 굳건히 지켰으며, 일제가 패망할 때까지 싸운 27년의 역사는 기적에 가깝다.

임시정부의 숭고한 정신은 우리 헌법에도 잘 반영되어 있다. 헌법 전문에서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명시하여 임시정부의 위상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임시정부야말로 대한민국의 법통이자 정통성을 상징하는 것이다. 특히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하고 정체를 ‘민주공화제’로 한 민주주의 이념하에서, 대한민국 임시헌장을 제정하고 국무원과 임시의정원을 두어 행정과 입법 기능을 수행하는 등 민주헌정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또한 한국광복군을 창설해 대일(對日) 선전포고를 함으로써 대한민국이 연합국의 일원임을 당당히 선포했고, 국내 진입작전도 준비했다. 1943년에 열린 카이로회담에서 연합국 수뇌가 한국 독립을 세계에 공약하게 한 것도 세계사적 의미를 갖는다. 지난 세기 초 식민 지배하에 있던 세계의 많은 민족이 독립운동을 전개했으나 우리 민족처럼 임시정부를 수립해 외교 활동에서부터 의열 투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독립운동을 한 경우는 유일무이하다.

임시정부 수립과 항일 투쟁은 조국 광복의 초석이 됐으며, 광복 이후 우리는 선열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정치적·사회적 격변 속에서도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으로 산업화와 민주화를 달성하면서 기적의 역사를 이뤄냈다. 정부는 미국에서 독립 유공자 6위의 유해를 국내로 모셔오는 등 선열들의 숭고한 자주독립 정신을 기리는 행사를 다양하게 추진하고 있다.

임시정부 수립 90주년을 기리는 오늘 우리는 전대미문의 경제위기를 겪고 있다. 지난날 숱한 역사의 고비와 굴곡을 거쳐 왔지만, 당면한 경제위기는 결코 쉽지 않은 도전이다. 오늘의 이 어려운 상황에서 임시정부의 정신을 되새기게 된다. 위기 속에서 단합한 선열들의 대동단결 정신은 우리 국민의 고귀한 자산이기 때문이다. 선열들이 보여 주었던 자기 희생과 통합정신은 지금 우리에게 요구되는 시대정신이라 하겠다.

김양 국가보훈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