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문화노트] 간판 프로 없애고 예능 강화한 KBS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8면

‘타이틀’만으로 시청자 시선을 잡아끄는 방송 프로그램이 있다. KBS-1TV의 오락물 ‘가족오락관’이 그런 경우다. ‘가족오락관’은 1984년부터 26년째 방송을 이어오면서 KBS의 간판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KBS가 20일로 예정된 개편에서 그 간판을 내리기로 했다. 제작비 절감 때문이란다. 고정 출연자들의 치솟은 ‘몸값’을 이유로 이십 년 넘게 키워온 대표 선수를 내보내는 셈이다. 이번 개편에선 방송 10년째인 드라마 ‘부부클리닉-사랑과 전쟁’(KBS2)과 일일 아침 드라마 ‘TV 소설’(KBS1)도 방출 명단에 올랐다.

이번에 폐지가 결정된 프로들은 높은 시청률을 이끌진 못햇지만 각 장르의 ‘모범 답안’처럼 여겨졌던 터라 아쉬움이 남는다. ‘가족오락관’은 신·구세대 스타들이 함께 출연하는 거의 유일한 예능 프로그램이었다. 특정 스타들이 예능 프로를 독식하다시피한 상황에서 신인 연예인이 끼를 선보일 수 있는 무대이기도 했다. ‘TV 소설’ 역시 서정적인 감성의 드라마로 호평을 받아왔다. 험악한 드라마가 대세인 아침 시간에 유일하게 작품성을 갖춘 드라마란 평이 많았다.

KBS는 경기 침체 탓에 “제작비가 많이 드는 프로그램을 축소한다”는 내부 방침을 세웠다고 말하지만 ‘부부클리닉’을 보면 제작비만의 문제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일반 단막극 제작비의 절반 정도(약 5000만원)로도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지켜온 ‘저비용 고효율’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해답은 후속 프로그램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KBS는 ‘부부클리닉’ 대신 ‘웰컴 투 코미디’란 개그 프로그램을 신설하고, 대형 버라이어티 쇼 ‘천하무적 토요일’을 편성하는 등 예능 프로그램을 강화할 방침이다. 현실에서 호응이 큰 서민형 프로를 ‘찍어누르기 식’으로 날려버리는 대신 때깔 좋고 박수 받기 좋은 예능 프로 늘어놓기에 급급한 셈이다.

경쟁력 강화는 이번 KBS 개편의 큰 틀이다. 그러나 공영 방송의 경쟁력이 반드시 시청률과 수익성에 근거해야 할까. KBS는 이 어려운 시절에 국민과 함께 가는 TV의 역할은 무엇일까 고민했는지, 그래서 얻은 편성전략이 있기나 한건지, 당장 내놓은 개편안은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정강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