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KBS '신작가곡의 향연'…가곡과 오케스트라 반주의 모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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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한국가곡은 클래식 음악 중에서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온 대중적인 장르다.

그러나 최근 성악가들이 신작 (新作)가곡보다 '흘러간 옛노래' 를 고집해 한국가곡의 전통은 단절되다시피 했다.

그런 의미에서 KBS - FM이 국내 작곡가들에게 매년 20여곡의 신작가곡을 위촉해 방송을 통해 보급하는 운동을 전개해온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지난달 27일 KBS홀에서 열린 '97FM 신작가곡의 향연' 은 올해로 10주년을 맞는 신작가곡 보급운동의 결산무대였다.

올해 서정주 시인의 시를 가사로 위촉한 신작가곡중에서 이경화의 '밤' 은 관현악을 통해 빚어낸 밤의 분위기를 현대적 감각으로 표현했고 이건용의 '그 날' 은 테크닉 과시 위주의 한국가곡 풍토에 경종을 울리듯 쉬우면서도 개성있는 선율을 선보였다.

그러나 박정선의 '석류꽃' 이나 이영조의 '춘향옥중가' , 정태준의 '국화옆에서' 를 포함한 대부분의 작품은 20년전의 한국가곡 양식을 답습하는데 그쳤다.

말하자면 'FM 신작가곡' 은 기존 한국가곡의 정형을 되풀이하거나 '한국적 정서' 를 표방한다며 5음음계 사용이나 민요 편곡에 집착해온 셈이다.

'신작가곡' 이 처음부터 오케스트라 반주를 전제로 위촉되는 것도 문제다.

오케스트라의 음향에 목소리가 파묻히지 않으려면 드라마틱 오페라 아리아를 방불케 하는 노래를 쓸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날 연주된 장일남의 '곰' 에서 보듯 마지막을 최고음 (最高音) 으로 끝내면서 청중의 박수를 유도하는 게 정석 (定石) 처럼 굳어져 버렸다.

오케스트라 반주 가곡에 익숙해진 청중은 시 (詩) 와 음악이 혼연일체가 되는 깊이있는 예술적 체험 대신 화려하고 큰 목소리만 찾게 되지 않을까.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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