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센타' 변신…북한전시품 없애고 내부단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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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건축은 시대정신을 담는 예술이다.

어떤 이는 '얼어버린 음악' 이라 했고, 어떤 이는 '무엇인가를 찬미하는 몸짓' 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그래서 우린 건축물을 통해 지나간 시절과 대화한다.

서울 장충동의 '자유센타' .남산타워와 국립극장.장충단공원으로 이어지는 남산의 흐름이 포근하다.

앰배서더.신라.타워 호텔을 죽 둘러보면 이곳이 상당히 아늑한 위치에 들어앉았다는 점도 새삼스럽다.

건물안에 서면 빌딩에 들어왔다기보다는 에펠탑이나 개선문 같은 거대 조형물 한 가운데 있는 느낌이다.

사무실이 있는 건물의 '몸통' 앞뒤로 거대 기둥이 늘어서 널찍한 복도를 만들고 있다.

위론 천장이 까마득하다.

시원하게 휘어 올라간 거대지붕 장식 (캐노피) 도 보는 이를 압도한다.

이 건물은 63년 12월에 세워졌다.

62년 서울에서 개최된 제2차 아시아 반공연맹 임시총회에서 교육연구기관을 설립하기로 결의한데 따른 것이었다.

누구는 박정희 군사정권 초기의 시퍼런 서슬에 대한 거부반응으로 평가를 시작한다.

하지만 건축학도의 발길은 끊이지 않는다.

그만큼 우리 건축사에 던지는 의미가 크다는 뜻일까. 사실 시대는 박정희 정권의 정통성 확보열망으로 얼룩지고 있었다.

그리고 당시 30대의 촉망받는 건축가 김수근씨의 의욕. 둘은 절묘하게 만나 이 '거대한' 건물을 탄생시켰다.

함석헌 선생은 "일반 민중의 이상을 가장 잘 나타내는 것이 건축예술" 이라고 일갈했지만, 자유센타의 경우 정권의 이념을 민중에게, 세계 만방에 과시하기 위해 만들어진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대건축가는 무엇을 어떻게 말하고자 했을까. 우선 이곳은 앞마당과 뒷마당의 높이가 달라 앞에선 1층이 뒤에서 보면 3층이다.

로비는 전후가 훤히 트였다.

그래서 현관을 들어서는 순간 정면으로 장충단 공원과 신라호텔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여기서 우린 '자유' 라는 단어가 주는 이중적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권력을 향해 부르짖는 '자유' 는 저항의 메시지를 담아내지만 권력이 민중을 향해 말하는 '자유' 에는 위선이 숨어 있다.

미로처럼 뚫린 이 건물의 계단을 오르내리며 떠올리는 '자유' 는 섬뜩할 정도다.

자유센타의 가장 큰 위협요소는 바로 외벽에 아무런 칠이나 장식을 하지 않은 '노출 콘크리트 마감' 이다.

시멘트를 굳히는 과정에 댔던 판자의 결까지 고스란히 살아있는 회색 콘크리트벽의 비정함 - .누가 '자유' 와 '반공' 에 대해 감히 반론을 꺼낼 수 있었을까. 최근 여기에 페인트가 덧씌워졌다.

아이보리.민트색 색을 입힌 것이다.

권불십년이란 단어를 떠올릴 만한 '사건' 이다.

92년까지만 해도 해외여행자 소양교육 장소. 그리고 전방으로 투입되는 동원예비군 집결지. 매년 수만명의 시민들이 이곳을 거쳐가며 '반공' 의 추억에 젖곤 했다.

소양교육은 폐지됐고 4~5년전부턴 지방 학생들의 견학도 끊겼다.

건물 앞.뒤뜰에 전시된 북한 차량과 야포도 더이상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지 못했다.

결국 이곳을 관장하는 '한국자유총연맹' 측은 올해 들어 대대적인 공사를 하면서 북한관련 전시품들을 없애고 말았다.

그리고 실로 어려웠던 결정, 페인트칠. 자유총연맹 관계자의 말. "김수근 선생이 살아있었다면 엄두도 못낼 일이겠지요. 하지만 시대의 변화를 따를 수 밖에요. " 이제 자유센타의 우반신 (右半身) 은 예식장이 됐다.

화려하게 내부단장을 하고 시범운영을 거쳐 지난주부터 본격적으로 결혼식을 유치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동안 잊혀졌던 우리 현대사의 한 상징물이 다시금 시민들에게 다가서게 된 것이다.

반공 이데올로기가 새겨진 건물에 미장원이 들어서고 웨딩드레스점이 생겼다.

한복집과 피로연 식당이 손님을 맞는다.

이제 자유총연맹의 교육도 예전의 '반공' 에서 '통일대비' 로 바뀌었다.

물론 '반공' 색채가 완전히 빠지진 않았지만 탈북귀순자와의 대화시간도 마련되고 누구라도 신청만 하면 점심을 대접하며 따뜻하게 맞는다.

북한관련 자료열람도 자유롭다.

자유센타의 명맥은 유지하는 셈이다.

페인트칠 아래 콘크리트 외벽에는 아직도 나무결이 선명하다.

여전히 군사혁명의 위세를 흠향할 만하다.

그러나 날카로운 건축미를 잃고 조금씩 무뎌지고 있는 건물 하나. 그 길목에 펄럭이는 깃발은 어떤 미래를 향해 아우성 치는 것일까.

강주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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