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신당에 할말 있다…기자의 통상적 '정보보고' 당리에 악용해도 되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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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언론사 정치부장은 칼날위에 서있다.

다른 부장이라고 그렇지 않을까마는 정치부장은 훨씬 더 그렇다.

평소에도 사내는 물론 외부로부터 늘 감시의 눈길을 받고 있다는 느낌속에 필자는 살고 있다.

특히 선거때는 감시와 견제의 눈길이 사방에서 쏟아지기 때문에 긴장도가 훨씬 높아진다.

정말 머리칼을 곤두세우고 하루하루를 보낸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문이 나오고 나면 (초판이 대체로 오후7시 안팎) 사내에서부터 지적이 뒤따르고 이해당사자로부터 이견이나 항의를 표시하는 전화가 오고, 심지어 신문사로 찾아오기도 한다.

아침에 출근하면 첫 일과가 으레 독자들의 항의전화를 받는 것으로 시작한다.

공감과 격려의 전화도 있지만 불만과 항의, 비난류의 전화가 더 많다.

대선과 같은 요즘엔 세 후보를 지지하는 독자들이 같은 사안을 놓고 상반되는 의견을 개진하기 일쑤다.

이런 전화를 받으면서 필자는 거듭 평형감각을 유지해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러기 위해선 취재현장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대해 보도된 기사의 배경이나 향후 전망, 정계의 뒷얘기, 보도하기엔 아직 설익었지만 앞으로 언젠가는 보도할 수도 있는 정부와 정계의 움직임등에 관해선 첩보성을 포함한 폭넓은 정보, 그것도 정확한 정보를 확보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서 정치부장은 다른 부장들도 그렇겠지만 기자들에게 이같은 성격의 많은 정보보고를 요구한다.

이에 따라 정치부 기자들은 통상적으로 정치부장이 알아두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정보 또는 첩보사항을 얻게되면 간단한 사안인 경우는 전화로 보고하지만 분량이 많으면 노트북에 정리해 본사로 전송.보고하는 체제를 유지해 오고 있다.

타언론사도 비슷한 형태의 정보 보고체제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이는 사실과 정보를 바탕으로 신문을 제작하는 언론사의 고유한 영역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정보 보고체제가 엉뚱한 오해를 낳게될 줄이야 필자는 전혀 생각지 않았다.

국민신당이 무기명 제보자의 날조된 얘기를 바탕으로 사실인양 성명을 내고 어떤 후보와 연결시켜 단정해 공격했다.

그 경위를 설명한다.

27일 오후 문제의 문건이 외부에서 나돌고 있다는 얘기를 들은 필자는 지난 7월24일자 컴퓨터 단말기상에서 '이국장앞 정보보고' 를 찾아보았다.

이 보고를 당시 한번 읽어본 적이 있다는 정도의 기억이 나는 것이었다.

'이국장' 은 편집부국장겸 정치부장을 맡고 있는 필자를 지칭한 것이다.

문제의 정보보고는 신한국당 대선후보경선 (7월21일) 이 끝난 후 정치부 정당반장이 이회창 (李會昌) 후보진영의 일부에서 경선과 관련한 자체분석과, 그에 따른 향후대책에 관해 설왕설래한 사항을 종합해 보고한 것이었다.

정당반장은 이회창후보진영의 경선이후 분위기를 정치부장이 알아두는 것이 좋고, 앞으로 기획에 참고하도록 하기 위해 정리해 보고한 것이었다.

2면의 관련 사진에서 보듯 필자에게 보낸 통상적인 정보보고임에도 국민신당이 지난달 29일 이를 "중앙일보 = 이회창선거전략본부" 라고 왜곡해 폭로한 것은 정계에서 흔히 있는 근거없는 비방행위임이 분명하다.

다만 필자도 새삼 문제가 돼서 그 보고를 정독해본 결과 전후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보았을 경우 제보자가 주장하듯 국민신당이 이를 의혹으로 볼 수도 있다는 점이 전혀 없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유 (類) 의 정보보고는 김영삼 (金泳三)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인사, 김대중 (金大中) 국민회의후보.이인제 (李仁濟) 국민신당후보에 대해서도 많다.

그러나 국민신당이 인용한 제보자의 주장은 완전히 날조된 것이다.

첫째, 편집국장 지시에 따라 필자가 특정기자에게 작성토록 했다는 주장은 앞에서 지적했듯 전혀 사실이 아니다.

정당반장이 정치부장에게 통상적으로 보고한 정보사항이다.

둘째, 이 보고를 모차장이 가필했다는 것은 정치부 사정을 전혀 모르는 사람의 지어낸 얘기며 정보보고의 종합관리자는 필자와 정치부장대우뿐이다.

셋째, 편집국장이 李후보를 만나 이를 조언했다는 것이나 필자가 이회창후보의 고흥길 (高興吉) 특보에게 이를 한부 전했다는 것은 날조다.

高특보는 지난 1월까지 중앙일보 편집국장으로 재직했던 분이다.

그러나 기자들은 통상 정계로 떠난 언론계 인사에게 별로 우호적으로 대하지 않을뿐만 아니라 특히 필자는 高특보의 이회창진영 가세에 따라 쏟아지는 오해를 염려해 그가 신문사를 떠난 후 개별적으로 만난 일도 없을뿐더러 전화통화조차 극히 꺼리는 실정이다.

넷째, 편집국장이 李후보에 대한 조언을 위해 정치부에 약 10회에 걸쳐 보고서를 작성토록 했다는 주장도 전혀 사실이 아님을 밝힌다.

다섯째, 만약 이회창진영에 이를 주기 위해 작성됐다면 문건의 사진에서 보듯이 '제목 이국장앞 보고' 라는 '정보보고' 형식으로 보고했을까. 또 감시체제의 칼날위에 노출된 필자가 그것을 그냥 그대로 지금까지 두었을까. 상식적으로 판단해보면 더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제보자는 자신의 주장에 신뢰성을 주기 위해 10회 정도의 문건을 더 작성, 다 지워버렸다고 왜곡했다.

필자는 국민신당 김충근 (金忠根) 대변인에게 이를 설명했고, 정치부기자 출신인 金대변인은 이를 수긍하면서도 당의 결정사항이라고 말했다.

국민신당은 이를 계속 정치적 목적에 왜곡.오용 (誤用) 하고 있다.

필자는 정치부에서 통상적으로 이루어지는 업무를 어떤 정파의 특정한 목적에 왜곡.오용되게끔 유출한 행위자나, 이를 '양심있는 제보자' 라고 미화하면서 중앙일보의 명예를 짓밟고 심대한 타격을 입힌 국민신당의 행위에 대해 취소와 사과를 요구하며, 그렇지 못할 경우 일어날 차후 사태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국민신당에 책임이 있음을 분명히 밝혀둔다.

이수근 편집부국장겸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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