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마음의 병 고쳐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5면

▶ 한우리독서문화운동본부 박선이씨가 어린이들에게 독서지도를 하고 있다. 최근에는 독서지도에 ‘독서치료’ 기법이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

책을 통해 마음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독서치료'가 각광받고 있다. 4, 5년 전부터 아동상담소 등에서 심리상담의 보조요법으로 쓰였던 독서치료가 최근에는 일반적인 독서지도 과정에서 예방 차원으로 응용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한국독서치료학회와 광주대.전남대 평생교육원 등 독서치료사를 양성하는 기관도 늘어나는 추세다.

◇"책을 통해 마음을 열어요"= 책은 아이들의 억눌린 분노나 슬픔을 적절하게 표현하는 데 좋은 매개체가 된다. 특히 집단 따돌림이나 부모의 이혼 등으로 마음에 상처를 받은 아이들은 일반적인 상담으로는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때 비슷한 고통을 당하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책을 읽으면서 "책 주인공의 마음이 어땠을까"라는 식의 이야기를 나누면 아이의 경계심이 한결 줄어든다.

한우리독서문화운동본부 산하 우리독서치료연구회 한이옥 팀장은 "분노나 슬픔에 억눌린 아이들에게는 자신의 감정을 폭발하는 장을 마련해주는 것만으로도 치료효과가 크다"고 말했다. 한 팀장은 "실제로 집단 따돌림을 당해온 한 어린이가 '마당을 나온 암탉'이란 책에서 '초록머리'가 친구들에게 배척당해 울부짖는 장면을 읽고 30여분 이상 울고 난 뒤 자신의 마음을 터놓게 됐다"고 말했다.

독서치료용으로 책을 고를 때는 결말에 주의해야 한다. 집단 따돌림을 피해 전학가는 식으로 마무리되는 책이나 자살 등의 극단적인 결말이 나오는 책은 피하는 것이 좋다. 긍정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주인공을 역할 모델로 삼아 배울 점을 찾아보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수줍음이 많아 자기 표현에 서툰 아이에게는 비슷한 성격의 주인공이 나오는 동화가 도움이 된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다'라는 깨달음이 아이를 편안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산만해 주의집중을 하지 못하는 아이에게는 독서 자체의 치료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한국독서치료학회 김현희 회장은 "짧고 쉬운 책을 한권씩 읽어나가면서 얻는 성취감이 자존감과 주의 집중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상황에 맞는 권장도서 목록은 '독서치료의 실제'(학지사), '책아 우리 아이의 마음을 열어줘'(청어람미디어) 등의 단행본이나 인터넷 독서치료 홈페이지(www.bibliotherapy.pe.kr)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주부 속앓이에도 책이 약=의사 표현을 제대로 못해 속앓이를 하는 주부들에게도 책은 효과적인 심리치료 도구가 된다. 대전 한밭도서관에서 30~40대 주부를 대상으로 독서치료 지도를 하고 있는 홍근옥씨는 "자녀.남편 등과 원만하지 못한 주부가 책을 통해 자신의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책을 찾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거절하지 못하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그림동화 '까마귀의 소원'(마루벌)은 주부들의 독서치료에 자주 이용되는 책이다.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별가루를 마지막 한줌까지 친구에게 나눠준 뒤 처량하게 누워 있는 주인공 까마귀의 모습에 "나도 이렇게 살았다"고 고백하는 주부들이 상당수다. 까마귀처럼 주변에서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무작정 헌신적으로 살아왔다는 자각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동화를 읽은 뒤 "까마귀는 왜 퍼주기만 했을까""상대방 기분을 상하지 않게 거절할 수 있는 대사를 만들어 보자" 등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주부들이 자신을 돌아보고 의사 소통법을 개발하는 기회를 만들 수 있다.

'동화 밖으로 나온 공주'(뜨인돌), '갑옷 속에 갇힌 기사'(뜨인돌), '위장된 분노의 치유'(규장) 등도 주부들이 자아를 발견하고 스스로를 사랑하도록 길을 제시하는 안내책자로 적당하다.

이지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