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신문의 날, 신문의 위기를 생각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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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오늘은 53번째 맞는 신문의 날이다. 언론창달의 중요성을 되새기며 축하해야 마땅하지만 안팎으로 심각한 위기에 처한 신문업계로서 선뜻 자축하기 힘든 게 작금의 현실이다. 한국 신문의 위기는 내부·외부의 두 요인에서 비롯되었다고 우리는 진단한다.

외부적으로는 미디어 환경 변화에 따른 독자층·광고수익의 지속적인 감소와 세계적인 경제위기가 초래한 경영난이다. 인터넷 등 뉴미디어의 발달과 미디어 간 융합 추세는 특히 젊은 세대가 전통적인 종이신문과 멀어지게끔 부추기고 있다. 1996년 69.3%였던 신문 구독률은 지난해 36.8%로 떨어졌다.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미국에서도 LA타임스의 모회사인 트리뷴사가 파산보호를 신청했고, 150년 전통의 로키마운틴뉴스는 폐간되는 등 지난해 이후 폐간을 결정하거나 검토 중인 신문이 10여 개나 된다.

각국 정부는 신문의 위기가 개별 신문사의 경영합리화 노력만으로 해결하기 힘든 구조적 문제라는 인식 아래 적극적인 지원책을 펴고 있다. 신문의 공공성에 대한 이해와 ‘신문의 위기는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국민적 공감대 덕분이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올해 초 신문을 중심으로 한 활자매체 지원정책을 발표했다. 98년 읽기진흥법을 제정해 신문독자 저변 확대를 지원하고 있는 미국에서는 지난달 24일 상원에서 신문사 세제지원을 골자로 하는 ‘신문회생법’이 새로 발의됐다. 일본은 2005년 국회에서 여야 가릴 것 없는 만장일치로 통과된 ‘문자·활자문화 진흥법’에 따라 국가 차원에서 신문 읽기를 장려하고 있다. 오스트리아·벨기에도 학교 내 신문 구독을 지원한다.

국내에서도 허원제 한나라당 의원이 중·고교에 신문을 무료로 제공하는 내용의 법 개정안을 추진 중이다. 심도 있는 논의를 거쳐 효과적인 법안이 마련되길 기대한다. 신문 읽기의 탁월한 교육적 효과는 이미 학계에서도 입증된 만큼 법으로 지원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본다. 기존 ‘독서문화진흥법’이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법률적 뒷받침은 국회에 계류 중인 미디어 관련 법안들의 조속한 통과다. 신문·방송 겸영 허용 등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법적 환경이 마련돼야 신문사들도 5공 시절 채워졌던 낡은 족쇄를 벗고 경영쇄신을 꾀할 수 있다. 변화된 미디어 환경에 발맞추기 위한 법안 마련에 여야, 진보·보수가 따로 있을 수 없다.

우리는 외부적 요인 못지않게 신문업계 자체의 문제점이 신문 위기의 큰 요인을 제공했다고 파악한다. 신문사들은 편향성·정파성으로 인해 독자들의 신뢰를 스스로 깎아 먹지는 않았는지 자문해야 한다. 신문끼리 건전한 상호 비판을 넘어 흠집내기식 비방을 일삼던 풍토가 결국 신문 모두의 위기를 재촉하지 않았는지 자성할 때다.

신문의 진정한 위기는 경영의 위기가 아니라 신뢰의 위기에서 온다. 본지가 지난달 베를리너판으로 판형을 바꾸면서 ‘신뢰’를 최선의 가치로 내세운 것도 이 때문이다. ‘독자 밑에서, 뉴스 위에서’라는 본지의 다짐도 독자의 믿음 없이는 신문도 없다는 인식에서 나왔다. 신문의 날을 맞아 겸허한 마음으로 독자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드린다.